한동끝시간은 한동대학교에서 매일 밤 9시반마다 한동대 재학생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드려지는 예배입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이 땅에 무너진 영역들을 회복하고자 기도 해온 학생들의 귀한 모임 입니다. 매주 월요일에는 북한과 통일을 위해 중보하는 월요끝시간이 드려지고 있습니다. <월요끝시간 기도회> 섹션에는 필자가 월요끝시간에서 전한 메시지들을 담았습니다.
#월요끝시간 #바벨로니안크리스천
(예레미야 29장 4-5절)
4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가게 한 모든 포로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5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에 살며 텃밭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
6 아내를 맞이하여 자녀를 낳으며 너희 아들이 아내를 맞이하며 너희 딸이 남편을 맞아 그들로 자녀를 낳게 하여 너희가 거기에서 번성하고 줄어들지 아니하게 하라
7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읍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라
(예레미야 29장 28절)
28 그가 바벨론에 있는 우리에게 편지하기를 오래 지내야 하리니 너희는 집을 짓고 살며 밭을 일구고 그 열매를 먹으라 하셨다 하니라
[제목: 바벨로니안 크리스천]
래리 오스본 목사님의 <바벨론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라는 책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마치 악의 제국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바벨론 제국의 이름이 이 책의 제목에 붙여진 이유는 바로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가 바로 바벨론이 아닌가 하는 인식 때문입니다. 래리 오스본 목사님은 책의 앞 부분에서 자신의 자녀들에게 책을 헌사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윌리엄과 케이티, 엠마에게 이 책을 바친다. 너희는 바벨론에서 자라고 있다. 다니엘처럼 소망과 겸손과 지혜로 살아가길 바란다.” 오늘은 <바벨로니안 크리스천> 이라는 제목으로 메시지를 짧게 나누고 함께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1) 바벨론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성경은 예수님이 재림하신 이후에 강력한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서 울부짖을 것이라고 합니다.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계 18:2).” 역사 속에서 이미 사라진 바벨론이 왜 계시록에서 언급되는 것일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바벨론은 악의 화신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바벨론은 영원한 악의 상징으로 기록됩니다. 그 이유는, 바벨론은 느부갓네살과 같은 악독한 왕이 통치하던 나라였으며, 불경건한 종교와 사악한 교육제도를 가진 나라였고, 그곳은 철저히 영적으로 적대적인 환경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오늘 본문의 시점에서는 이미 이스라엘이 망하고 1차 포로들이 바벨론으로 사로잡혀간 이후였습니다. 악의 제국 바벨론으로 잡혀간 이스라엘 민족을 향해서 예레미야는 그곳에 정착해서 살아야 한다는 말씀을 선포합니다. ‘거기서 오래 지내야 한다,’ ‘너희는 거기서 집을 짓고 거기에 살며 텃밭을 만들고 열매를 맺어 그 열매를 먹으라.’
이스라엘 공동체에게 바벨론 침공과 이스라엘의 멸망은 굉장히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선민사상이 강했던 그들에게 이 사건은 트라우마로 남았습니다. 그들은 이제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과 언약이 여전히 유효한지도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 말씀은 그들에게 더더욱 충격적인 말씀이었습니다. 그들은 애당초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의해 침공 당하리라는 말씀도 믿지 않았지만, 그 이후에도 본인들이 빨리 본국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낙관적인 확신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그런 이스라엘을 향해 예레미야 선지자는 선포합니다. 거기 집을 짓고 살아라. 텃밭을 만들어 가꾸고 열매를 맺어 그 열매를 먹으라. 자녀들을 낳고 번성하라. 너희가 거주하는 성읍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라.
부흥하는 때가 있고, 핍박받는 때가 있습니다. 점점 더 반기독교적인 흐름이 강해지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같은 감정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빨리 다시 익숙하던 곳, 따뜻한 곳, 편했던 곳으로 돌아가고만 싶은 낙관적인 희망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우리들에게 오늘날 예레미야가 이스라엘에 선포했던 그런 말씀을 주신다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정착하라. 집을 짓고 살아라. 텃밭을 가꾸고 열매를 맺으라!
(2) 씨를 뿌리고 열매를 맺자
마지막으로 오늘은 저의 이야기를 조금 나눌까 합니다.
기억을 거슬러 학창시절로 돌아갑니다.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일평생 교회에서자랐던 저는 유아기와 소년기를 모두 기독교적인 환경에서 보냈습니다. 그랬던 저에게 처음 신앙적인 고민과 어려움이 찾아온 것은 고등학교를 진학했을 때였습니다. 기독교 재단 중학교를 다녔던 저에게 일반 사립계 고등학교의 환경은 매우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세속적이고 반기독교적인 선생님들의 발언들과 태도들 그리고 청소년기 반복되는 죄와 교회 공동체 안에서의 갈등 속에서, 저는 복합적인 이유로 기독교 신앙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게 되었고 큰 슬럼프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한 선교단체에서 선교훈련을 받으면서 그 슬럼프를 극복하고 믿음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에서 3학년으로 올라가던 겨울방학에 저는 선교단체에서 2주간 터키로 미션트립을 다녀왔습니다. 터키에서도 특별히 쿠르드 난민들이 거주하는 지역에 가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곳 현지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했습니다. 비록 짧은 미션트립이었지만, 오랫동안 국가가 없어 타민족, 타국가들에게 이용만 당해온 쿠르드 민족의 아픔에 대해 배운 저는 그때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한국에 돌아가면 저도 친구가 없는 누군가의, 의지할 곳이 없는 누군가의 친구가 되어주고 그에게 복음을 전하겠다고 말입니다.
한국으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고3 생활을 시작한지 2주가 되지 않아, 정말 신기하게도 하나님께서 저에게 한 영혼을 붙여 주셨습니다. 그 친구는 학교에서 딱히 어울리는 친구가 없었고 밥도 늘 혼자 먹었습니다. 한동대식 표현으로 저는 그 친구의 밥고가 되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 대학에 진학하기까지 1년간 저의 고3 생활 중 거의 대부분의 쉬는 시간과 식사시간에는 그 친구가 있었습니다.
다 지나고 나서 하는 말이지만, 스트레스를 정말 많이 받았습니다. 그 친구에게는 미안하지만 말, 성격, 행동, 마인드, 생활습관, 가정환경 등등 모든 면에서 ‘그동안 너가 왜 혼밥했는지 알겠다’ 라는 말이 입으로 튀어나오는 것을 참아야만 할 때가 참 많았습니다. 그 친구의 자기 중심적인 마인드, 이기심, 특이한 집착이 저를 분노로 몰아넣을 때도 참 많았습니다. 어떨 때는 너무 화가 나서 요즘 표현으로 부들부들 하느라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공부에 집중을 잘 하지 못한 때도 많았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저에게 그 친구를 그냥 내버려두라고 조언했습니다. 도대체 너가 왜 저런 애를 챙겨 주냐고 하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친구를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친구와 본격적으로 친구가 된 지 몇 주 안 되었을 때, 제가 그 친구에게 복음을 전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 설명을 차분히 듣던 그 친구는 예수님을 믿겠다고 하였고 저와 함께 학교 건물 한 구석에서 영접기도를 했습니다. 감사했습니다. 하지만 그 한번의 영접기도가 그 친구를 변화시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했지만, 그의 신앙, 그의 믿음은 소화시키기 쉬운 부드러운 말씀으로 양육 받아야 했고, 그의 성품, 그의 사상, 그의 언행은 모든 부분에서 다루어 져야 했습니다.
하루는 너무 힘들고 분통이 터졌습니다. 억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손해를 본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주님께 그 심정을 토로하는데, 저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 주시며 지긋이 저를 바라보시는 그분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나도 너를 그렇게 참았다.” “나도 너를 그렇게 기다린다.” 라는 음성이 제 마음에 떠오를 때, 저는 눈물을 머금고 다시 “네, 주님. 주님이 저를 견뎌주셨으니 저도 더 기다리겠습니다. 저도 더 견디겠습니다.” 라고 기도를 마무리하곤 했습니다.
그렇게 일년의 시간이 지나고 우리는 각자 다른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저는 한동대로 왔지만 주말마다 대구 모교회로 출석 했었습니다. 대구에서 진학한 그 친구도 제가 다니던 교회에 출석했습니다. 왔다 갔다 했지만 그래도 나오긴 했습니다. 군대를 다녀온 이후로는 자주 만날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가끔씩 통화만 했습니다. 가끔가다 통화를 하면 또 신앙이 퇴보한 것 같았지만 그때마다 다시 복음을 얘기했습니다. 다시 말씀을 얘기했습니다. 계속 씨를 뿌렸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이제 칠년이 넘었습니다. 그런데 작년에 하루는 그 친구와 통화를 할 일이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졸업 후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 친구가 서울로 간 이후로는 제가 별로 신경을 쓰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대화를 나눠보니 놀랍게도 저보다 신앙생활을 더 열심히 하고 있었습니다. 매일매일 큐티하며 말씀대로 살려고 몸부림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가 던진 한마디가 이거였습니다. “지현아, 정말 고맙다. 고등학교 때 나한테 복음을 전해줘서 예수님 만날 수 있도록 나랑 친구해줘서 정말 고맙다. 니가 없었다면 지금의 내가 없었을 거다.”
그때 저는 코끝이 찡해지면서 정말로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되돌아보면 나는 한 게 없는데, 결국은 주님이 내가 뿌린 씨앗이 열매를 맺게 하셨구나 라는 고백이 나왔습니다.
하나님을 부인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흐름을 가진 이 세상에서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때로는 환경을 탓하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 이런 데서 어떻게 전도합니까? 이런 곳에서 어떻게 선교합니까? 하나님 이런 분위기에서 어떻게 복음에 대해서 얘기합니까? 여기서는 안됩니다.’ 여기서는 살지 않을 것이라고 마음으로 다짐하며 다시 편한 곳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현실 도피적인 낙관을 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게 끝난 것 같고, 망한 것 같고, 여기는 바벨론이구나 싶은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그 분의 말씀은 이것입니다. 그곳에 살라. 그곳에서 밭을 갈고, 땅을 기경하고, 씨를 뿌리고, 열매를 맺으라. 너희가 거주하는 그 땅을 위해 기도하라! 그것이 우리가 나아갈 방향입니다. 우리가 해야할 일입니다. 오늘 하루도 씨를 뿌리는 것! 오늘 하루도 열매를 맺는 것! 오늘 하루도 이 땅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제목]
[가사]
우리 오늘 눈물로 한알의 씨앗을 심는다
꿈꿀수없어 무너진 가슴에 저들의 푸른꿈 다시 돋아나도록
우리 함께 땀흘려 소망의 길을 만든다
내일로 가는길을 찾지 못했던 저들 노래하며 달려갈 그 길
그날에 우리 보리라 새벽이슬같은 저들 일어나
뜨거운 가슴사랑의 손으로 이 땅치유하며 행진할 때
오래 황폐하였던 이 땅 어디서나 순결한 꽃들 피어나고
푸른 의의 나무가 가득한 세상 우리 함께 보리라
1. 말씀 붙들고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바벨론 같은 이 땅에서도 매일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바라며 기도하도록
- 환경을 탓하지 않고 매일 매일 씨를 뿌리며 열매 맺을 수 있도록
- 나를 두신 그 곳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2. 한동을 위해서 기도합시다.
- 바벨론 같은 세상에 나가서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체험하도록
- 혼탁하고 복음의 적대적인 세상의 흐름 속에서도 다니엘의 믿음을 본받도록
3. 북한을 위해서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바벨론 같은 곳에서 예수 믿는 자들을 지켜 주시길
- 때가 차매, 하나님의 은혜의 해, 복음자유통일의 날이 올 수 있도록
- 가장 척박한 문화의 중심에서 복음의 씨가 뿌려져 열매 맺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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