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끝시간은 한동대학교에서 매일 밤 9시반마다 한동대 재학생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드려지는 예배입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이 땅에 무너진 영역들을 회복하고자 기도 해온 학생들의 귀한 모임 입니다. 매주 월요일에는 북한과 통일을 위해 중보하는 월요끝시간이 드려지고 있습니다. <월요끝시간 기도회> 섹션에는 필자가 월요끝시간에서 전한 메시지들을 담았습니다.
#월요끝시간 #MIC
(창세기 16장 15-16절)
15 하갈이 아브람의 아들을 낳으매 아브람이 하갈이 낳은 그 아들을 이름하여 이스마엘이라 하였더라
16 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았을 때에 아브람이 팔십육 세였더라
(창세기 17장 1-9절)
1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2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
3 아브람이 엎드렸더니 하나님이 또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4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5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6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7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8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9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제목: MIC (Make it count)]
요즘도 그런 지는 잘 모르겠지만, 모범 인생관이라고 해야 할까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 우리 머리 속에 “디폴트 정답”에는 다음과 같은 다소 모호한 단어들이 있습니다. ‘잘,’ ‘열심히,’ ‘빨리빨리,’ ‘최선을 다해서.’ 때때로 우리는 막연하게 ‘최선을 다하자’ 라던가 ‘열심히 살면 어떻게든 되겠지’ 라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물론 열심히 잘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그냥 ‘열심히’ 보다, ‘어떻게 열심히’ 가 더 중요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 말로 ‘잘 해.’ 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영어 표현으로 ‘make it count’ 라는 표현이 있는데요. 어떤 일을 앞둔 사람에게 인생에 카운트가 되도록 잘 하라고 조언하는 표현입니다. 오늘은 <Make it count> 라는 제목으로 메시지를 짧게 전하고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1) 계수(count)되는 인생
성경을 읽다 보면, 성경 인물들의 나이가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는 구절이나, 어쩔 때는 우리가 이걸 왜 읽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루한 족보가 기록되어 있는 구절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지루하게만 생각했던 이 구절들도 관점을 조금만 달리해서 보면 우리에게 새로운 의미를 보여줄 수 있습니다. 바로 ‘계수(count)한다’ 는 것의 의미입니다.
단적인 예로, 오늘 본문에서 모든 믿는 자들에게 ‘믿음의 조상’으로 기억되고 있는 아브라함에 대한 기록을 이러한 관점에서 읽어 보시면 재미 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창세기 12장에서 처음 등장하게 됩니다.
(창세기 12장 1, 4절)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아브라함에 대한 기록의 시작은 아브라함이 75세일 때 시작됩니다. 이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처음 만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따라갑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만나기 전이었던 75세 이전의 인생은 성경에는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과 관계 있을 때만 의미 있는 것입니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그 다음에 나옵니다. 자식이 없었던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처음 나타나실 때부터 그의 자손들을 통해 복음의 역사를 만들어 가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때가 아브라함이 75세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브라함에게는 그때까지 자녀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께서 아시는 것처럼 아브라함은 100세에 첫 아들 이삭을 얻습니다. 계산이 되시나요? 우리에게는 고작 몇 분하면 읽을 수 있는 이야기일지 몰라도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그 시작을 보기까지 25년을 기다렸습니다.
문제는 이 25년 사이에도 갭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 창세기 16장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사라의 몸종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이라는 아들을 낳습니다. 그때의 나이가 86세. 이 사건 이후로 아브라함에 대한 기록이 다시 시작되는 시점은 아브라함이 99세일 때입니다. 여기 사라진 13년이 존재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않고 자신의 방법대로 아들을 얻은 후 13년 동안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침묵하십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만난 후였지만 이 13년은 성경에서 의미 있는 인생으로 계수 되지 않습니다.
성경은 모든 것을 다 기록하지 않습니다. 의미 있는 것만 기록합니다. 중요한 사실만 기록합니다. 족보도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에 존재했던 모든 사람의 족보와 기록이 다 실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를 바라보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 따라갔던 믿음의 계보, 믿음의 가문이 기록됩니다. 에서가 아니라 야곱을 기록합니다. 사울이 아니라 다윗을 기록합니다.
여러분의 삶은 하나님 앞에서 의미 있게 계수(count)되고 있으신가요?
(2) 언약에 근거한 삶
하지만, 우리의 인생이 의미 있는 것으로 계수 되기 위해서는 결국 앞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그냥 열심히’ 가 아니라, ‘어떻게 열심히’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저는 학교에서 법을 공부합니다. 법을 공부하면서, 배운 사실 중에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연결 지을 만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절차법에 따라 하지 않은 것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소용 없다는 것입니다. 변호사가 소송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관할권이 없는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면, 결국에는 판사가 해당 소송을 기각할 것입니다. 그 변호사가 소송을 얼마나 열심히 준비했느냐, 얼마나 많은 노력과 시간과 비용을 들였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은 카운트되지 않습니다. ‘다 의미 없다’ 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앙생활에 있어서 우리는 무엇을 근거해야 합니까? 우리는 신앙생활을 그냥 잘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냥 막연히 열심히 하고 있지 않습니까? 결국 우리가 근거해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 입니다.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할 때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이 의미 있는 것이 됩니다. 아브라함은 하갈을 통해 낳은 아들인 이스마엘도 사랑했지만 이스마엘은 약속의 자녀로 카운트 되지 않습니다.
(창세기 21장 12절)
12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임이니라
(3)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존재했던 인생 중에 가장 군더더기 없이 하나님의 뜻을 완전하게 이루고 간 인생이 있습니다. 갈릴리 나사렛 지방의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33세에 자신의 짧은 생을 마감한 이 사람의 이름은 예수입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의미 있는 인생의 진정한 롤모델입니다. 우리의 롤모델이 되시기 위해 우리와 같은 몸을 입고 우리와 같은 모습으로 이 땅에 사셨습니다. 그분에 대해 사도 요한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말씀이 육신이 되셨습니다. 그는 선지자들의 예언대로 오셨고, 자신에 대한 말씀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자신의 삶 가운데 주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셨고, 말씀대로 죽으셨고, 말씀대로 다시 사셨습니다. 불순종과 사망의 자녀들 가운데 오셔서 순종과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는 말.’ 생각해보면 정말 신비한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이 되었다는 표현을 도대체 우리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이 우리 집 윗층에 사는 동네 형이었다고 생각해봅시다. 그분은 어떻게 부모님을 대하셨을까요? 그분은 어떻게 형제들을 대하셨을까요? 그분은 어떻게 공부하셨을까요? 그분은 어떻게 일하셨을까요? 어떻게 예배 드리셨을까요? 어떻게 기도하셨을까요?
맞습니다. 잘 믿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결국은 적용이 어렵습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복음의 큰 뜻 안에서 주님의 뜻을 구체적으로 내 삶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각자의 상황과 분량이 다르고 부르심이 다릅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함께 연합하여 하나님의 선하시고 완전하신 뜻을 이루게 됩니다.
물론 우리는 예수님이 아닙니다. 완전한 순종은 커녕 반나절도 온전히 순종하기가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다만, 우리는 원래도 헛된 우리의 인생이 오직 예수로 인해 온전히 의미 있는 인생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의 인생을 조금이라도 더 헛되게 보내지 않고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기꺼이,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의미 있게 드려 지기를 바랍니다.
(전도서 12장 1절)
1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이 메시지가 도리어 여러분께 너무 큰 부담을 주어 여러분을 좌절시키지 않기를 바랍니다. 만약 그랬다면 그것은 온전히 저의 부족함 때문이며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바로 1분 전까지 헛된 삶을 살았더라도, 지금 다시 결단하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말씀 앞에 다시 나아가는 것입니다. 나 자신의 모습으로 나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바라보고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보좌, 그 거룩한 보좌로 담대히 걸어가는 것입니다. 내 열심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말씀대로, 약속대로, 법대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1-5절)
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4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5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지치고, 방향을 잃고, 쓰러질 때가 있지만, 다시 일어섭시다. 예수를 바라봅시다. 인본주의적 열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 하나님의 약속을 붙듭시다. 그것만이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만이 하나님께 계수(count)됩니다. 결국에는 우리 모두가 의미 없는 삶의 습관과 방향성들을 정리하고, 전쟁에 나갈 수 있는 성숙한 용사들로 계수되기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기도제목]
1. 말씀을 붙들고 함께 기도합시다.
- 하나님 앞에 계수 되는 인생, 의미 있는 인생을 살 수 있도록
- 하나님의 약속, 말씀에 다시 나아갈 수 있도록
- 각자를 향한 부르심, 약속에 순종함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2. 한동과 한동의 예배를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히브리서 10:23-25)
23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 한동 공동체에 대한 관심
- 개인의 회복 / 한동의 예배 회복
- 기도의 영역을 넓혀갈 수 있도록
3. 북한과 통일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에베소서 6:10-13)
10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자유, 예수 믿을 수 있는 자유
- 탈북민들을 위해 사역하시는 교회와 사역자들을 위해
- 장기적 관점에서 통일을 이룰 수 있는 인재들이 세워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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