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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끝시간 기도회

그루터기니라 (이사야 6장 1-13절)

by 버닝우드 2020. 10. 27.

한동끝시간은 한동대학교에서 매일 밤 9시반마다 한동대 재학생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드려지는 예배입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이 땅에 무너진 영역들을 회복하고자 기도 해온 학생들의 귀한 모임 입니다. 매주 월요일에는 북한과 통일을 위해 중보하는 월요끝시간이 드려지고 있습니다.  <월요끝시간 기도회> 섹션에는 필자가 월요끝시간에서 전한 메시지들을 담았습니다.


월요끝시간 _ 그루터기니라

  

[성경말씀] (이사야 6장 1~13절)

1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2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3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4 이같이 화답하는 자의 소리로 말미암아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6 그 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7 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10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11 내가 이르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하였더니 주께서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는 황폐하게 되며

12 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13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 (아멘)


 

[메시지 제목: 그루터기니라]

 

(1)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은 다음과 같은 구절로 시작됩니다.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성경에 등장하는 웃시야 왕에 대한 다른 기록을 보면, 웃시야는 자신의 아버지 아마샤 왕을 이어 50년간 예루살렘을 다스린 유다 왕으로서, 특히 열왕기나 역대기에는 손에 꼽게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왕들 중 한 명입니다. 성경은 그를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다고 평가합니다. 물론 그렇게 선하게 평가된 인물이었던 그도 말년에는 마음이 교만하여 하나님께 치심을 받고 나병환자로 인생을 마무리 하게 되지만 말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의 남쪽을 50년간 다스렸던 웃시야 왕이 죽었다는 사실을 배경으로 시작됩니다. 이 구절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냥 한 사람이 죽었다는 뜻일까요? 영광스러웠던 다윗 왕국 이후 이스라엘은 여로보암의 반역에 의해 분단되고 분열되었습니다. 역사는 흘러갔고 왕들이 계속해서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다윗과 같이 선한 왕으로 평가되는 왕은 다시 나오지 않았습니다. 다윗을 닮기는커녕 오히려 정반대로 하나님 보시기에 더 큰 악을 행했습니다. 하나님께 특별한 부르심을 받고 세워진 이스라엘일지라도 그들은 그들의 부르심과 사명을 망각하고 타락한 인간본성의 끝으로 달렸습니다. 그들의 사회와 문화는 타락했고, 경제적 침체와 외세의 침략으로 이스라엘은 시간이 지날수록 몰락의 가도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오늘 이사야는 그 종말의 역사 한복판에서 부름을 받습니다. 그나마 선하게 평가 받았던 웃시야 왕도 죽습니다. 정권이 바뀝니다. 이스라엘의 정치적 상황, 사회적 상황은 다시 한치 앞을 알 수 없기에 불안하고 혼란스럽습니다. 기대와 희망보다는 염려와 절망이 더 당연해 보이는 상황 속에서 이사야에게 하나님이 찾아 오십니다.

 

(2) 높이 들린 보좌

 

이사야는 무엇을 보았습니까? 그는 주님의 보좌를 목도합니다. 바라봅니다. 그런데 그 주님의 보좌는 전혀 흔들리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그 보좌에 앉아 계십니다. 주님께서 좌정하고 계십니다. 그 보좌에서 다스리고 계십니다.

 

우리는 절망적인 상황을 마주하거나 어려움에 부딛히면 하나님이 우리를 떠나셨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우릴 버렸다고 고백합니다. 아마도 우리의 죄의식이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도록 작용하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전쟁에서 죽임을 당하고 대제사장 엘리마저도 사고로 죽자, 만삭이었던 엘리 제사장의 며느리는 그 충격으로 아들을 조산하고 그 아들의 이름을 이가봇이라고 짓습니다. 이가봇이란 이름의 뜻은 ‘여호와의 영광이 떠났다’ 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오늘 이사야가 보았던 환상 속에서 우리는 한가지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보좌는 우리 눈에 보이는 상황과 관계 없이 굳건히 서 계시며 그는 그 보좌에 앉으셔서 여전히 다스리고 계시며 그분이 마땅히 받으셔야할 모든 영광과 예배를 받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이사야는 천사들이 이렇게 찬양하는 광경을 목격하게 됩니다. “거룩 거룩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이사야가 보았을 이 예배의 장면을 한번 상상해보십시오. 셀 수도 없이 수많은 천사들이 서로 화답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배할 때에, 이사야는 그의 감각으로 이 장면을 묘사합니다. 그들이 찬양하는 소리 때문에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에는 연기가 가득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상황 속에서 다스리고 계시며 예배 받고 계십니다.

 

(3)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이 영광스런 광경 속에서 이사야는 한가지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이 죄인이라고 하는 분명한 인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내가 죄인이다’ 라고 탄식하는 이사야의 절규 속에 특이한 표현이 있습니다. 바로 자신을 ‘입술이 부정한 자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는 자’ 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사야가 심한 욕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을까요?

 

이사야가 자신을 ‘입술이 부정한 자’ 라고 표현한 이유는 바로, 그 입술에서 나오는 말이라는 것이 인간의 존재양식에서 어쩌면 가장 본질적인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말은 어쩌면 우리의 존재 그 자체입니다. 말은 우리의 자아와 정신과 의식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도구입니다. 여러분이 떠올릴 수 있는 가장 빠른 기억, 여러분이 제일 어릴 때의 기억을 떠올려 보십시오. 아마 여러분이 말을 하지 못할 때의 기억은 떠오르지 않을 겁니다. 말은 우리 존재 그 자체입니다. 심지어 성경은 요한복음 1장에서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라고 선포합니다.

 

그렇기에 이사야가 ‘나는 입술이 부정한 자로소이다’ 라고 고백한 것은 그가 단순히 욕을 걸죽하게 내뱉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회개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가 품었던 부정한 생각들이 언어를 통해 자신의 입술로 나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그의 입술에서 나오는 말이 형성하는 자신의 생각, 자신의 정신, 자신의 정욕과 그 모든 것을 회개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하나의 언어로 묶여 있는 공동체 속에서, 이사야는 부정한 개인과 마찬가지로 타락한 개인들이 모인 공동체의 언어와 생각, 정신과 문화도 부정하다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입술이 부정함과 동시에 입술이 부정한 사람들 중에 거주한다는 사실로 인해 탄식합니다.

 

(4)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자신의 부정함의 괴리로 인해 절규하고 있는 이사야에게 하나님은 달궈진 숯을 그 입에 대어 주시며 죄사함을 선포하십니다. ‘너의 악이 제하여졌고 너의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이사야는 부르심을 받기 전에 그 자신의 죄의 문제가 먼저 해결되어야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보좌 앞에선 개인이 그분과 일대일로 해결되어야 할 매우 개인적인 문제이지만 동시에 가장 필수적인 과정입니다. 우리는 뭔가 개인적인 일을 벗어난 큰 일을 하고, 사명감을 요구하는 공적인 일을 하면 나의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당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원하십니다. 당신을 깨끗하고 정결하고 거룩한 사람으로 변화시키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그 반대도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개인적인 죄에 문제에 메여 있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죄의 문제에 얽매어 우리의 인생을 낭비하기를 바라지 않으십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이 죄사함에 대한 구절은 딱 한 절입니다. 딱 한마디입니다. 주님은 딱 한마디로 단번에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 버리시는 겁니다. 그에 비해 하나님을 묘사하고 예배하는 장면은 네 구절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집중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상황에 매몰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분의 보좌를 바라봐야 합니다. 그분의 예배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5) 나를 보내소서

 

죄의 문제가 해결된 이사야에게 반대로 하나님께서 탄식하시며 절규하십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그 탄식이, 그 절규하시는 음성이 이사야에게 전달됩니다. 개인적인 죄의 문제가 해결된 이사야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합니다. ‘주여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소서.’

 

(6) 거룩한 씨가 그루터기니라

 

하지만 그의 사역, 그의 사명은 장밋빛 성공대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보내시며 도리어 어두운 미래를 예고하십니다. 아무도 듣지 않을 거라고 하십니다. 그들이 들어도 깨닫지 못할 거라고 하십니다. 결국은 그 땅이 황폐하게 될 것을 경고하십니다. 그러나 한줄기 빛과 같은 그분의 약속이 있습니다. 바로 거룩한 씨, 남은 자들, 그루터기를 남겨두시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여러분이 바로 그 그루터기입니다.

 

이 세상을 살다 보면 참 어려운 일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예수님께서 예언하셨던 난리소문을 많이 듣습니다. 전쟁이 있습니다. 전염병이 있습니다. 기근이 있습니다. 핍박이 있습니다. 적그리스도 체제가 일어납니다.

 

그러나 여러분 눈에 보이는 환경에 현혹되지 맙시다. 그때 이사야가 보았던 그 주님의 보좌를 봅시다. 땅은 진동하고 요동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우리의 죄를 회개합시다. 공동체의 죄, 국가의 죄라는 말에 속지 맙시다. 그 말 뒤에 숨지 맙시다. 다 우리 각 개인의 죄입니다. 우리 자신의 죄를 회개합시다. 주님은 단번에 우리 죄를 씻으십니다. 주님의 탄식에 우리가 응답합시다. 그분의 부르심에 응답합시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심정으로 기도의 자리를 지키며 우리가 보냄 받은 곳으로 가서 말씀을 선포합시다. 복음을 전달합시다. 여러분이 그루터기 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보았던 불타는 떨기나무. 불에 타고 있지만 자신은 소멸되지 않는 그 불타는 떨기나무가 여러분입니다. 우리가 기도로 다시 우리가 선 곳에서 불을 지핍시다. 모닥불을 피워보면 흥미로운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장작더미에 불을 지피면 불이 타오릅니다. 활활. 그런데 불을 붙인 지 얼마 안되어 나무 한 개를 꺼내보면 그 나무에는 불이 붙어 있지 않습니다. 바로 꺼집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 장작더미 속에서 태운 나무를 꺼내면 그 나무는 그 자체로 불이 활활 타오릅니다. 그 나무가 곧 불이요 그 불이 곧 그 나무입니다. 우리가 기도의 자리를 사모합시다. 장작더미에서 떨어져 나와도 혼자 타오를 수 있는 불이 될 때까지 함께 불을 지핍시다. 우리가 그루터기입니다. 우리가 불타는 떨기나무 입니다.


 

[기도제목]

 

1.   오늘 말씀을 붙들고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환경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기를

-      자신의 개인적인 죄를 회개합시다

-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고 응답합시다

-      거룩한 그루터기 동역자들을 구합시다

 

2.   한동대학교를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      전염병으로부터 교내 구성원들을 보호하여 주시길

-      수업여건, 생활여건 등 학기를 진행하는데 어려움이 해결될 수 있도록

-      학교 리더십과 학생 리더십들에게 지혜와 능력을 더하여 주시길

 

3.   북한과 통일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      전염병 확산과 수해 재난으로 인해 북한주민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들을 위한 실질적인 지원과 도움의 손길이 닿을 수 있도록.

-      탈북민 사역자와 북한 지하교회 교인들을 보호하여 주시길

-      정부가 북한인권재단 지원을 다시 확충하고 교류확대와 함께 탈북민 및 북한인권문제를 포기하지 않도록

 

주님, 감사합니다. 우리를 이 모든 상황 가운데서도 다시 예배의 자리로 부르시니 감사합니다. 당신의 말씀을 듣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아버지, 세상 사람들은 다들 현실을 보라고, 정신 차리라고, 그렇게 말해도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지식과 우리의 환경을 초월하신 높이 들린 보좌에서 여전히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세상을 다스리고 계신 분이 우리 주 하나님 주님이심을 믿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초월하신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찾아오셔서 당신의 살아계심을 드러내시고 말씀하시는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주님이 진짜 현실이고 주님이 진짜 실재입니다. 아버지 우리가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영광의 주님을 예배하고 그 영광을 목도하는 자리에 서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그 주님을 만나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합니다. 죄에 매몰되어 있는 삶이 아니라, 이사야처럼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께서 내 인생에 예비하신 그 목적, 그 부르심을 발견해서 그것을 위해 달려갈 수 있는 진짜 인생을 살기 원합니다. 잘려 나가는 나무 줄기가 아니라, 거룩한 씨, 뿌리, 그루터기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우리가 다 그루터기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그래서 당신의 다시오심, 당신의 언약과 약속이 성취되는 것을 목도하는 빛의 세대로 우리를 세워 주시옵소서. 거룩하신 주님,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을 예배합니다. 우리가 이 기도의 자리를 지키며 불을 지피겠습니다. 불을 내려 주시옵소서. 우리 각자가 불이 되어 타오르게 하여 주옵소서. 모든 영광을 주님께만 올려 드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