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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끝시간 기도회

평양대부흥

by 버닝우드 2020. 11. 3.

한동끝시간은 한동대학교에서 매일 밤 9시반마다 한동대 재학생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드려지는 예배입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이 땅에 무너진 영역들을 회복하고자 기도 해온 학생들의 귀한 모임 입니다. 매주 월요일에는 북한과 통일을 위해 중보하는 월요끝시간이 드려지고 있습니다.  <월요끝시간 기도회> 섹션에는 필자가 월요끝시간에서 전한 메시지들을 담았습니다.


 

[메시지 제목: 평양대부흥]

 

두 장의 사진을 보여 드립니다.

 

 

첫 번째 그림은 죽음을 앞둔 한 선교사가 하나님께 기도를 하는 모습입니다.

 

 

두 번째 사진은 구한말 이 땅에 일어났던 놀라운 기적 평양대부흥 시기에 신자가 된 평양의 교인들의 모습입니다.

 

이 두 장의 그림과 사진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일까요? 이 두 장의 사건은 도대체 어떻게 연결되는 것일까요? 오늘은 부흥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평양대부흥>이라는 제목으로 메시지를 짧게 전하고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1) 한 청년 선교사

 

 

여기, 한 선교사가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로버트 저메인 토마스. 토마스 선교사는 당시 대영제국에 속한 웨일스 출신이었습니다. 헌신적인 목회자의 가정에서 태어난 토마스는 아주 뛰어난 수재였는데, 불과 14세에 예나 지금이나 수재들만 입학할 수 있는 옥스퍼드 대학교 지저스 칼리지의 최우등 장학생으로 선발되었지만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입학이 보류되기도 하였습니다.

 

토마스의 아내 역시 좋은 집안 출신이었습니다. 캐롤라인 고드프리의 아버지 존 고드프리는 지역 최고의 갑부였습니다. 탠서의 주민 중에 그의 땅을 밟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살림을 맡는 하인만 15명에 달하는 재력가였습니다.

 

집안이나 학력이나 재능, 그 어느 것 하나 빼놓을 것 없었던 이 부부는 모든 것을 버립니다. 1863년 그 당시 영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열악했던 중국으로 떠납니다. 그 모든 좋은 것들을 포기했던 이유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강력한 갈망이 그들을 사로잡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그들에게 맡기신 선교의 소명이었습니다.

 

영국을 떠난 지 5개월만에! 이틀이나 사흘 혹은 일주일이 아닙니다. 5개월입니다! 5개월만에 그들은 중국 상하이에 도착합니다. 이때부터 여러 가지 환경적인 어려움이 닥쳐 옵니다. 상하이에 도착했을 때 런던 선교회가 약속했던 집은 이미 런던 선교회 상하이 지부장인 선교사의 가족이 살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토마스 선교사의 아내 캐롤라인은 영국을 떠날 때 이미 임신 중이었습니다. 기나긴 항해, 상하이의 더운 날씨, 그리고 함께 사는 다른 선교사 가족과의 갈등이 캐롤라인에게는 적지 않은 스트레스가 되었습니다.

 

1864년 토마스는 중국 내륙 한커우로 선교를 가게 됩니다. 그러나 토마스가 떠난 사이 비극이 일어납니다. 캐롤라인과 가깝게 지냈던 미국 선교사의 부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것이었습니다. 당시 중국에서 선교사의 죽음은 흔한 것이었습니다. 토마스와 함께 사역했던 200여 명의 선교사들 가운데 50명 이상이 각종 질병이나 중국인들의 폭력에 의해서 죽었습니다.

 

머나먼 타국에서 피붙이보다 가까웠던 친구의 갑작스런 죽음은 임산부에게 큰 충격이었고, 이 충격으로 인해 캐롤라인은 유산을 하고 말았습니다. 캐롤라인은 남편에게 유산을 했지만 걱정하지 말라고 편지합니다. 그러나 하혈을 많이 했던 캐롤라인은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생사를 헤매다 1864년 “주님은 나에게 고귀한 분입니다.” 라는 유언을 남긴 채 스물 아홉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선교지에서 첫 아이와 아내의 죽음은 스물 네 살의 청년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이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내가 사경을 헤맬 때에도 제대로 도와주지 않은 선교사 가족과의 갈등, 사례비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고참 선교사와의 갈등으로 그는 계속되는 고통에 시달렸고, 결국 그는 끝내 런던 선교회에 사표를 던지고 맙니다.

 

1864년, 연이은 고통에 지칠대로 지친 선교사는 상둥성 북부 해안 도시 즈푸로 떠납니다. 즈푸에서 그는 세관 통역관으로 일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고통스러운 인생마저 사용하셨던 것이었을까요? 즈푸는 한반도에서 볼 때 중국의 항구 중 가장 가까운 항구였습니다. 토마스는 즈푸에서 조선인들을 만나게 되고 조선에 대해 알게 됩니다. 예의가 바르고 늘 흰옷을 입고 다니는 조선인들을 보며, 토마스는 조선인들이 큰 역량을 가진 민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선교사로서 자신을 실패자로 여겼던 그의 마음에 다시 한번 열정이 불타오릅니다. 그는 조선에서 복음의 씨앗이 풍성한 열매로 맺어지리라는 예감을 가졌습니다.

 

1865년 토마스는 스코틀랜드 성서공회의 대리인 자격으로 첫 조선 선교여행을 다녀옵니다. 성과는 고무적이었습니다. 1866년 베이징으로 돌아온 그는 런던 선교회에 조선에 복음 전해야 한다고 편지합니다.

 

 

그런 토마스에게 또 한 번 조선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열렸습니다. 미국 상선인 제너럴 셔먼 호가 평양으로 떠난다는 정보를 입수한 것이었습니다. 셔먼 호는 매우 큰 상선이었고, 성경을 마음껏 실을 수도 있었습니다. 1866년 8월 9일, 토마스는 성경과 기독교 서적, 한복을 들고 배에 오릅니다.

 

제너럴 셔먼 호가 처음 닻을 내린 곳은 백령도였습니다. 8월 17일 셔먼 호는 대동강 안쪽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대동강 변에는 서양 배를 구경하기 위해서 2천여 명이 모여들었습니다. 토마스에게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기회였습니다. 그는 보트를 타고 강가로 가서 성경책과 기독교 서적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서투른 조선어로 복음을 전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8월 27일 경 상황이 악화됩니다. 통상을 요구하는 제너럴 셔먼 호와 거부하는 조선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조선군의 순시대장이었던 이현익이란 사람이 제너럴 셔먼 호에 억류되고, 분노한 평양 관군이 사격을 시작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 되었습니다. 이때 퇴역 장교 박춘권이란 사람이 단신으로 제너럴 셔먼 호에 올라 인질을 구출합니다. 9월 5일, 썰물로 수위가 내려간 대동강 변에 제너럴 셔먼 호가 좌초되자, 조선군은 유황을 뿌린 거룻배에 불을 붙여 제너럴 셔먼 호에 충돌시킵니다. 제너럴 셔먼 호는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였고, 선원들은 배에서 뛰어내려 탈출을 시도했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조선군의 칼과 창이었습니다.

 

배가 불타는 마지막 순간까지 토마스는 배에 남아있었습니다. 그는 큰 소리로 무슨 소리를 외치며 있는 힘을 다해 대동강변을 향하여 성경을 던졌습니다. 그는 무엇이라고 외쳤던 것이었을까요? 오문환이라는 사람은 토마스의 최후를 이렇게 증언합니다.

 

“토마스는 죽기 전에 뱃머리에서 용감하게도 홀로 ‘야소’를 외치고 남은 성경을 뿌렸다.”

 

그가 마지막까지 외친 이름은 바로 “예수”였습니다. 토마스는 한 권의 성경책을 가슴에 품고 배에서 내립니다. 체포되어 끌려간 그는 자신을 향하여 칼을 겨눈 조선군에게 끝까지 품고 있던 성경을 전합니다. 칼이 무릎 꿇은 선교사의 가슴을 찌릅니다. 아까 제너럴 셔먼 호에서 인질을 구출했던 박춘권이라는 자는 후에 토마스 선교사를 죽인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토마스를 죽인 그는 가족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오늘 서양 사람을 죽였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점이 있다. 내가 그를 찌르려고 할 때에 그는 두 손을 마주잡고 무슨 말을 한 후에 웃으면서 책 한 권을 내밀며 받으라고 권하였다. 결국 그를 죽이기는 했지만, 그 책을 받지 않을 수가 없어서 가지고 왔다.”

 

(2) 젊은 청년선교사의 순교, 평양대부흥의 시작

 

오문환이라는 사람은 1918년부터 토마스의 행적을 조사합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모든 것을 잃은 스물 여섯의 젊은 청년 선교사의 짧은 사역에도 불구하고, 토마스를 만나 성경을 받거나 그와 면담을 했던 조선 사람 중에 오문환이 만난 사람만 무려 200여명이었습니다. 1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단 두 번의 전도여행을 통해서 그가 얼마나 열심히, 열성적으로 복음을 전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군의 관리였던 박영식은 토마스가 남기고 간 성경책을 보고 비상한 생각을 합니다. 당시에는 종이가 귀했기 때문에 좋은 종이로 만든 성경책은 집안 벽지로 도배하기에 안성맞춤이었습니다. 그는 성경책을 한 장씩 뜯어서 그의 집안 벽을 도배해버립니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박영식의 집은 이후에 토마스에게 성경을 받았던 최치량에게 팔려 여관으로 사용되는데, 1890년 하루는 미국 선교사 사무엘 마펫 (한국명으로는 마포삼열)이라는 선교사와 그의 전도를 받은 한석진이라는 사람이 그 여관에 머무르게 된 것이었습니다. 마포삼열 선교사는 훗날 평양에 평양신학교를 세운 인물이었고, 한석진이 한국이 낳은 최초의 목사 7인 중 한 명이 되는 인물이었습니다.

 

상상해보십시오. 복음의 불모지를 개척하기 위해서 평양을 방문한 그들이 머문 방이 바로 성경책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그 여관을 기반으로 복음전도와 선교를 지속해 나갔고, 마포삼열 선교사는 복음을 전하며 동시에 교인들에게 민주주의를 가르쳤습니다. 교회가 바로 민주적인 조직체였기에 눌린 자를 해방시켜 자유케 하는 복음을 조선 백성들에게 심어준 것이었습니다.

 

 

평양에 신자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1893년 최치량의 여관에 평양의 최초의 장로교회인 널다리골 교회가 세워집니다. 널다리골 교회는 계속해서 성장하여서 장대현교회가 됩니다. 장대현교회는 평양대부흥이 일어났던 바로 그 교회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기준에서 실패했던 26세의 한 젊은 청년 선교사의 삶과 죽음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토마스가 전한 성경이 박영식의 집에 도배되었고, 그 집이 최치량의 여관이 되었으며, 그곳에 마포삼열 선교사와 한석진이 머물렀고, 마침내 널다리골 교회로 변하여서 장대현 교회로 성장하면서 평양대부흥이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장대현 교회는 우리 민족의 모리아산이 되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건축한 하나님의 성전이 모리아산에 건축되었다는 기록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그런데 그 장소가 원래 어떤 장소인 줄 아십니까? 모리아 산은 바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유일한 독자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을 하셨던 곳이고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마음으로 그 명령에 순종하여 이삭을 바치려고 했던 장소였습니다. 가장 처절한 희생이 드려진 모리아산에 하나님의 성전이 지어집니다.

 

장대현 교회의 사연도 비슷합니다. 젊은 아내와 태중의 아이를 선교지에서 잃고, 스물여섯 살에 생명을 잃은 토마스가 전한 성경으로 도배된 바로 그곳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떻습니까? 선교사의 순교의 피로 세워졌던 교회가 서 있던 곳에 지금은 다른 것이 서 있습니다. 1948년, 김일성은 장대현 교회를 부수고 그 자리에 자신의 거대한 동상을 세우고 “평양학생소년 궁전”을 지었습니다. 우리의 선조들이 피눈물을 쏟으며 기도했던 그곳에서 지금은 김일성 찬양이 울려 퍼집니다.

 

사실 이것은 평양대부흥의 주역 길선주 목사의 예언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일제의 정치적 책동을 쉽게 분별하지 못하고 동조하는 목사들을 보며 이렇게 이렇게 선포합니다.

 

“한국 교회에 시련의 때가 왔습니다. 우리가 깨어 기도하지 않으면 장차 다가올 무서운 환란을 극복할 수도 없고, 도탄 가운데 빠져 있는 민족에게 희망이 될 수도 없습니다. 지금은 회개해야 합니다. (…)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평양 교회는 장차 하나님을 반역하는 큰 죄를 범하게 될 것이요, 그로 인해 한국의 예루살렘인 평양 도시는 마귀의 소굴이 될 것입니다.”

 

훗날 역사로 볼 때, 우리는 길선주 목사의 마지막 예언이 정확하게 실현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땅의 부흥의 상징이었던 그 도시가, 지금은 배도와 우상숭배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한 사람의 순종과 희생으로 이 땅에 부흥을 허락하셨던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 부흥을 갈망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오늘도 여전히 잠을 자며 배도의 큰 흐름에 동조하며 따라가고 있습니까? 우리가 이 시간 함께 기도하며 나아가면 좋겠습니다.


 

[기도제목]

1. 이 땅에 부흥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복음에 대한 열정을 회복합시다.

 

우리가 오늘 우리가 함께 보았던 토마스 선교사의 생애, 그의 순종을 기억하며 기도합시다. 마치 사도바울처럼 누구보다 뛰어나고 많은 것들을 누릴 수 있었음에도 그 모든 것들은 그들이 가슴 깊숙한 곳에 간직한 복음에 대한 타오르는 열정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기에 그들은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을 버리고 복음을 전하러 떠납니다. 그들이 그것이 어려운 줄 몰라서 그렇게 결정한 것이었을까요? 아니었습니다. 알고서도 그렇게 결정했습니다. 이유는 그들이 가진 복음이 너무나 귀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 같은 비참한 죄인들을 위해 자기 독자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 대신 못박아 죽이셨다는 그 메시지가 너무나 놀랍고 너무나 귀하고 세상 어떤 것을 가지고 와서 바꾸자고 하여도 바꿀 수 없는 너무나 귀한 보물과 같은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심지어 목숨마저 버립니다. 에콰도르 아마존 유역에서 아우카 부족에 의해 창에 찔려 순교한 짐 엘리엇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깁니다. “영원한 것을 얻기 위해 영원하지 않는 것을 버리는 자는 결코 어리석은 자가 아니다.”

 

이 무슨 사랑입니까? 이 무슨 놀라운 은혜입니까? 한창 자신의 인생을 펼쳐 나갈 스물 여섯의 나이에 서툰 조선어로 ‘예수’ 라는 그 이름을 외치며 성경을 전해주다가 칼에 찔려 죽은 이 청년의 희생을 통해 하나님은 부흥의 역사를 세워 가십니다.

 

우리가 이 시간 기도할 때, “주님! 우리에게 이런 선교사들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부흥을 허락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주님 우리가 이들의 희생에 대해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은혜에 대해서 감사를 잊었다면 회개합니다. 우리에게 토마스 선교사가 가졌던 복음에 대한 열정을 회복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을 더 뜨겁게 사랑할 수 있도록. 복음을 더 뜨겁게 갈망할 수 있도록. 그래서 나 혼자 이것을 품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다른 이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밖에 없는 구령의 열정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옵소서.”

 

2. 북한과 복음통일을 위해서 기도합시다.

 

우리가 이 시간 다시 한번 기도할 때 북한의 회복을 위해서 기도합시다. 한반도의 예루살렘. 대부흥의 진원지였던 평양은 이제 배도의 상징, 우상숭배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김일성은 장대현 교회를 부수고 그 교회가 서 있던 터 위에 자신의 우상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 무자비한 반역의 결과를 우리 민족, 북한의 형제자매들이 당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순종을 통해 하나님은 수많은 사람에게 생명과 은혜를 주셨고, 한 사람의 불순종을 통해 또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영원한 고통과 저주에 빠졌습니다. 오늘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바울은 로마서 9장에서 구원받지 못한 자기 민족, 이스라엘 민족을 두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저들이 구원을 받을 수만 있다면! 나의 형제들이 구원을 받을 수만 있다면! 나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나는 그것을 원한다!”

 

우리는 저 멀리 미국땅에 흑인이 한 명 죽어도 무릎을 꿇는 퍼포먼스를 하며 슬퍼합니다. 우리는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중동아시아 등 세계를 품고 선교합니다. 사도 바울도 그렇게 했습니다. 누구보다 이방인들을 선교하기 위해 힘썼던 이방인들의 사도였습니다. 그런 그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의 민족, 나의 형제들을 구원할 수만 있다면! 나는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져도 좋다! 나의 형제들을 구원할 수만 있다면!’

 

우리가 오늘 무엇을 구해야 하겠습니까? 바로 평양의 회복입니다. 북한의 회복입니다. 한반도의 예루살렘이라 불렸던 평양. 평양대부흥의 진원지, 거룩한 도시, 이 도시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형제자매들을 해방하고 주님께 이 도시를 다시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장대현 교회를 부수고 그 위에 세워진 김일성 동상. 우리가 갈망하는 것은 김일성 동상을 부수고 다시 그 위에 장대현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누가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다시 부흥이 필요합니다. 토마스는 영국 대부흥의 후예입니다. 주여 한국에도 새로운 부흥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이 하십니다. 주님은 하실 수 있으십니다. 우리의 작은 기도와 순종을 들어 사용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껏 원수에게 빼앗긴 것들을 다시 수복하여 주님께 올려드릴 수 있도록 우리를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함께 북한의 해방과 평양의 회복을 위해서 기도합시다. 주여 우리에게 다시 부흥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마무리 기도]

 

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14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15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롬 11:13-15)

 

주님, 이 나라 이 민족을 너무 사랑하셔서 한 사람의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하셨는데, 선교사들의 희생, 순교, 피흘림으로 이 땅에 복음을 허락해 주셔서 정말로 감사를 드립니다. 세상이 다 실패했다고 여길 만한 20대의 한 선교사의 전도와 순교를 통하여, 우리 민족은 예수의 이름을 들을 수 있었고 예수의 이름을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복음에 빚진 자 입니다. 어둡기만 했던 우리 민족의 역사 속에 주님께서 복음의 빛을 비추어 주신 것입니다. 주님 우리는 단순히 복음만 받은 것이 아니라, 평양대부흥이라는 세계부흥사에 기록될만한 부흥을 은혜로 받았습니다. 이 부흥을 통해 우리 민족에 복음이 폭발적으로 전파될 수 있었습니다. 주님 우리가 다시 이 복음의 능력을 회복하기를 원합니다. 복음을 더 갈망하며 부흥을 더 갈망하기를 원합니다. 지금은 원수에게 빼앗겨버린 부흥의 도시 평양. 장대현 교회가 서 있던 그 곳에 지금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우상이 서 있지만, 우리가 오늘 회개하며 부흥을 구할 때 하나님께서 북한을 자유케 하시며 평양을 회복하는 날을 주실 줄 믿습니다. 그곳에 김일성 우상을 부수고 다시 장대현 교회를 세울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도록 우리에게 은혜를 허락하시고 새로운 부흥을 주시옵소서. 우리가 부흥을 기다리고 갈망하며 오늘 하루하루 신실하게 주님께 순종하며 우리 각자를 향한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시옵소서. 결국에는 당신의 뜻과 계획을 온전히 이루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을 예배합니다. 모든 영광을 주님께만 올려드립니다. 우리의 유일한 소망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