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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끝시간 기도회

내게 있는 것 (사도행전 3장 5-6절)

by 버닝우드 2020. 11. 10.

한동끝시간은 한동대학교에서 매일 밤 9시반마다 한동대 재학생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드려지는 예배입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이 땅에 무너진 영역들을 회복하고자 기도 해온 학생들의 귀한 모임 입니다. 매주 월요일에는 북한과 통일을 위해 중보하는 월요끝시간이 드려지고 있습니다.  <월요끝시간 기도회> 섹션에는 필자가 월요끝시간에서 전한 메시지들을 담았습니다.


(사도행전 3장 5-6절)

5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아멘)

 

[메시지 제목: 내게 있는 것]

 

여러분은 삶의 목적과 비전이 있으신가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삶의 의미와 목적을 추구합니다. 인생을 한낱 운명의 장난과 같이, 농담과 같이 여기는 사람, 진지함이라고는 1도 찾아볼 수 없는 사람도 어쩌면 자신의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아 헤매며 고뇌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삶의 의미와 목적, 어떠한 방향성을 필요로 합니다. 의식적이든지 무의식적이든지 상관없이, 우리는 사실 모두 자신의 삶의 의미, 목적, 비전, 방향성을 갈망합니다. 이것이 없는 사람은 마치 망망대해에 나침반도 없이 표류하는 배와 같고, 가을날 정처없이 바람에 날려가는 낙엽과 같습니다. 청년의 때는 이것을 알아가고 발견해 나가는 시기입니다. 청년의 때는 때로는 실수도 하고, 때로는 시행착오도 겪으며 서툴지만,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의 인생에 주신 의미와 목적과 비전을 찾아가는 시기입니다.

 

그런데 이게 참 어렵습니다. 목적과 비전을 찾는 것도 어려운데, 이것을 찾는 경험을 하고 나서 이것을 바람직한 속도로, 바람직한 방향으로 지켜내 나가는 것, 그 중심을 지키는 것, 하나님의 섭리와 인간의 책임 사이에 균형을 이루는 것. 그게 참 어렵습니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잘 모르시겠다면… 결혼을 하는 것도 어렵지만, 결혼 후 가정을 바르게 세워 나가는 일은 더 어렵습니다. 드디어 가슴이 뛰는 전공을 발견하는 것도 어렵지만, 우리가 선택한 이 혹독한 훈련의 과정을 성실히 견디며 유의미한 결과를 내는 일은 더 어렵습니다. 북한을 향한 하나님의 눈물이 오늘 내 눈에서 흐르는 일도 어려운 일이지만, 세상의 소리와 환경적인 어려움 속에서 그 마음을 계속해서 지켜 나가는 것은 더 어렵습니다. 오늘은 비전을 찾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 받은 마음을 지키는 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청년의 때에 누구나 한 번은 가슴 뛰는 일을 발견합니다. 자신의 사명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일. 소명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비전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자신의 삶에 의미와 목적을 부여하며, 나아갈 방향성을 제시해주는 그런 일 말입니다. 그것을 발견한 청년은 가슴이 뜁니다. 흥분합니다. 그리고 드디어 이것이 내 삶에 진정한 의미를 주는 일이라고 확신합니다.

 

하지만 청년은 조급합니다. 청년은 말하고 싶어합니다. 청년은 자신의 소명을, 비전을 말하고 싶어합니다. 청년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선택한 일이 옳은 것임을 설득하고자 합니다. 자신의 비전이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한 것임을 피력합니다. 청년은 자신의 비전이 인정받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여러 번의 팩트폭행과 뼈를 때리는 크리틱입니다. 반대에 부딪힌 청년은 자신의 비전이 옳다는 것을 계속 설득하고자 합니다. 청년은 자신의 계획은 의로운 것이며 꼭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청년은 곧 이내 쓰라린 사실을 직면해야만 합니다. 그것은 청년이 가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저의 이야기입니다. 북한해방을 외치는데, 복음통일의 비전을 외치는데, 저는 가진 것이 없습니다. 이 사실을 도저히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청년은 계속해서 말로 자신을 증명해 보려고 합니다. 이 사실에 제대로 타격을 입은 청년의 비전은 때로는 회복불가능한 좌절에 빠져 영원히 잠들어 버리기도 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월요끝시간을 통해 북한해방과 복음통일의 비전을 선포해 왔습니다. 주님께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달라고 구하며 기도했습니다. 한동에, 대한민국에 북한해방과 복음통일에 대한 거룩한 사명과 소명이 부어지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담대히 선포했습니다. 그런데 이 비전을 품고 나아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종종 외부 혹은 우리 내면에서 이러한 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래서 너가 한 게 뭐가 있냐? 이게 다 무슨 의미냐? 네가 도대체 가진 게 뭐냐? 줄 수 있는 게 뭐냐?

 

이 비전과 현실의 괴리 앞에 우리는 보통 두 가지 반응을 하고자 하는 충동을 느낍니다. 한가지 반응은 계속해서 말로써 나를 증명하기 위해 애쓰는 것입니다. 일일이 반박하려고 하고, 일일이 설득하려고 하고, 일일이 내가 옳다는 것을 말로써 증명하려고 합니다. 절대로 자존심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반응은 반대로 자존감에 큰 타격을 입고 자신이 받은 비전과 사명을 포기해 버리는 것입니다. ‘내가 현실을 너무 몰랐구나. 나 같은 건 아무 것도 아니구나. 나는 가진 것도 없으면서 무슨 비전을 품으며, 아무 것도 없으면서 누군가에게 무엇을 줄 수 있겠는가.’ 상처받은 마음을 꽁꽁 싸매고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립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과연 이 두 가지 반응만이 있는 것일까요? 만약 우리의 비전이 우리 자신에게만 근거한 것이라면 우리의 반응은 두 가지 옵션 뿐입니다. 우기든지 포기하든지. 다른 가능성이 없습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예수 안에 있는 자라면, 우리의 비전이 우리에게 근거한 것이 아니라, 약속의 주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라면, 우리에게는 다른 옵션이 있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덧입는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을 구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3장 6절)

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아멘)

 

첫째로, 내가 없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고백합니다. 갈릴리 촌구석에서 자란 어부 출신인 이 제자가 고백합니다. 자신은 가진 것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당신을 너무 도와드리고 싶지만, 저에게는 당신이 원하시는 것이 없습니다. 은과 금은 없습니다.’ 자신이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둘째로 베드로는 자신이 분명히 가지고 있다고 확신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입니다. 예수 이름의 능력입니다.

 

비전은 언제나 누군가를 섬기고 세우고자 하는 사명 속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 비전을 이루고자 할 때, 누군가를 섬기고 세우고자 할 때, 이 사람이 원하는 것이 내게 없음으로 인해 그 사실이 답답하고 좌절스러울 때가 자주 있습니다. 그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내게는 그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날때부터 앉은뱅이였던 이 사람은 돈을 구걸합니다. 그것이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라고 믿으며 돈을 구걸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사실은 앉은뱅이였던 이 사람은 자신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돈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사람에게 진정 필요했던 것은 예수님이었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 걸을 수 있는 능력이었습니다. 베드로에게 은과 금은 없었지만, 베드로가 가진 것은 이 세상 모두가 필요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 예수 이름의 능력!

 

베드로는 말로 자신을 증명하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그는 묵묵히 자신이 행하고자 하는 일을 행합니다. 능력이 나타납니다. 성령의 권능! 예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능력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눈에 보이는 초자연적인 기적에 국한해서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의 고민, 우리의 질문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이렇게 질문하여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예수님이 있습니까? 예수 이름의 능력이 있습니까? 베드로가 내게 있는 것을 준다고 하였는데, 여러분에게 내게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은과 금이 있습니까? 은과 금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 우리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의미와 목적과 방향성을 주는 핵심! 예수가 있습니까? 예수 이름의 능력이 있습니까?

 

그러면 우리 안에 이런 소리가 들립니다. ‘나는 제자가 아닙니다. 나는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기도 부끄러운 삶을 살았습니다. 저는 실패자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모두 베드로의 실패를 알고 있습니다. 그가 예수님의 면전에서 얼마나 처절하게 그분을 부인했는지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는 주님과 함께 죽겠다고 장담을 했었습니다.

 

그가 갈릴리 해변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다시 만났을 때, 고기를 굽고 계시는 주님 앞에 베드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앉아 있습니다. 그 때 주님이 물어보십니다. ‘베드로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네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이 아십니다.’ 주님이 또 물어보십니다. ‘베드로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다시 대답합니다. ‘네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이 아십니다.’ 그런데요. 주님이 또 물어보십니다. ‘베드로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때 베드로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여러분 실패하셨습니까? 하나님 앞에 받은 비전, 소명, 사명, 다짐을 못 지켰습니까? 예수님을 철저히 부인하셨습니까? 저도 실패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주님이 우리에게도 물어보십니다. ‘지현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나의 모든 실패가 떠오릅니다. 나의 모든 부끄러운 지난 날의 과거들이 떠오릅니다. 주님이 물어보십니다. 호되게 꾸짖지 아니하시고 물어보십니다. ‘예원아, 유림아, 성원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우리는 눈물을 삼키며 고백합니다.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니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실패로 끝나는 줄 알았는데, 주님께서 다시 우리에게 비전을 주십니다. ‘내 양을 먹이라.’ 주님의 양을 먹이라고 하십니다. 주님이 필요한 그 영혼들, 길 잃고 방황하는 영혼들. 그들에게 내게 있는 것을 주라고 하십니다. 무엇입니까? 예수. 예수 이름의 능력.

 

주님은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그들에게는 처참한 실패의 현장이었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십니다. 거기서 머물며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성령의 권능으로 덧입혀 질 때까지!

 

좌절과 실패의 현장에서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은 분명합니다. 성령을 구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을 구하는 것입니다. 계속 말씀 읽고 기도하며, 성령의 권능으로 덧입혀 질 때까지 계속 구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이 실패의 자리에 세우십니다. 다시 세우십니다. 후퇴는 없습니다. 실패했다고 해서 후퇴하면 유다가 됩니다. 후퇴는 지적, 영적 자살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실패의 자리에 다시 세우시며, 우리가 실패한 그 자리에서 당신의 성령의 역사를 시작해 나가십니다. 우리가 비전을 유지할 수 있는 근거는 거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받은 부르심과 마음을 지키며 하나님의 사명을 끝까지 감당할 수 있는 비결도 거기에 있습니다. 내게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아직도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 채 주저 앉아 있는 저 영혼들을 붙들어 일으킬 수 있는 예수의 능력이 우리에게 있습니까?


 

[기도제목]

 

1. 예수님을 갈망하며 성령의 권능을 구하며 기도합시다.

 

우리가 이 시간 함께 말씀 붙들고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베드로와 같이 선포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맞습니다. 저는 가진 게 없습니다. 저는 줄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시간 내가 진정 주기를 바라고 진정 가지고 있기를 바라는 것이 있습니다. 주님 바로 당신입니다. 예수님. 예수님의 능력. 주저 앉아 있는 자들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예수 이름의 능력을 갖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질문은 그것입니다. 은과 금이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예수가 없다면, 예수 이름의 능력이 없다면, 우리의 비전, 우리의 사명은 진정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이루어 질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오늘 간절히 구해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예수님! 내가 정말로 예수님을 소유하기를 원합니다. 내가 정말로 예수 이름의 능력을 받기를 원합니다. 나의 비전과 사명이 하나님께 근거를 두기를 원합니다.

 

이미 실패했다고요? 괜찮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실패의 자리에서 다시 일으키십니다. 실패의 자리에서 성령의 권능으로 덧입혀 질 때까지 우리는 기도하는 겁니다. 함께 기도합시다. 주님! 우리에게 성령의 권능을 덧입혀 주시옵소서. 예수님을 향한 갈망을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예수 이름의 능력으로 주님이 주신 비전과 사명을 능히 감당할 수 있도록. 잃어버린 영혼들을 일으켜 세울 수 있도록 힘과 능력을 부어 주시옵소서!

 

 

2. 한동통일동행WEEK를 위해서 기도합시다.

 

우리가 두 번째로 기도할 때, 이번 11주차에 진행되는 한동통일동행WEEK를 놓고 함께 기도합니다. 북한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 우리가 지금까지 매주 그것을 구하면서 기도해 왔습니다. 그 부르심, 사명, 비전, 그 마음을 우리가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요?

 

사실 우리가 주변을 둘러보면, 하나님의 마음으로 관점으로 통일을 바라보는 사람. 그리고 그것을 믿음으로 간절히 구하는 사람은 정말 많이 없습니다. 아무도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 것을 왜 하냐고 합니다. 우리가 이 사명을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요?

 

우리가 이 행사를 정말 귀하게 여깁시다. 대학교에서 하나님의 심정으로 북한과 통일을 위해 배우고 기도하는 행사를 일주일동안 여는 것은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그 자체가 기도 응답이요 눈물의 열매일 수도 있습니다. 북한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품은 우리가 해야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시간을 내서 행사에 참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을 주시지만 그 비전과 마음을 지키고 키워 나가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작은 관심, 작은 노력들을 통해서 계속 키워 나가는 것입니다.

 

이 행사를 위해서 기도합시다. 주여, 이 행사를 통해서 한동에 북한과 복음통일을 향한 주님의 마음이 더욱 뜨겁게 부어지게 하옵소서! 각자 부르신 자리에서 이 사명을 붙들고 준비하는 주님의 용사들을 키우시고 일으켜 주옵소서! 행사의 모든 순서와 프로그램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섭리로 이끄시고 보호하여 주옵소서. 이 행사가 더욱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마무리 기도]

 

(사도행전 1장 6-8절)

6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7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역사의 주관자이시며 각 사람의 인생을 인도하시는 하나님,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던 우리에게 진정한 비전과 소망을 허락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우리 마음 속에 두신 그 거룩한 소원을 추구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는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그러나 주님 때로는 우리가 받은 그 마음, 그 비전을 지키는 것은 너무나 힘들고 어려워서 그것을 내 힘으로 지켜보려고 안간힘을 쓰기도 하고, 그러다가 좌절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완전히 땅에 묻어 버린 채 눈에 보이는 현실에만 타협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봅니다.

 

주님 특별히 우리가 이 월요끝시간이라는 귀한 기회를 통해 북한해방과 복음통일을 외치며 기도해왔지만, 이 원대한 비전과 나의 현실의 괴리 가운데 제자들처럼 ‘주님, 주께서 이 나라를 회복하심이 도대체 언제입니까?’ 라고 반문하며 믿음이 흔들릴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 주님께서 이때 우리에게 제시해주시는 돌파구는 바로 우리가 성령의 권능을 덧입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는 것입니다. 성령충만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땅끝까지 당신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 우리가 바라고 갈망하는 것은 바로 당신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나에게 은이 없어도, 금이 없어도, 예수가 없어 방황하는 영혼들에게 내게 있는 것, 예수님을 담대히 전해주는 것입니다. 인생의 의미를 찾지 못한 채 주저 앉아 있는 영혼들을 예수 이름의 능력으로 일으켜 세우는 것입니다. 주님 우리에게 그러한 능력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실패했어도 다시 주님을 의지하겠습니다. 다시 주님께 나아가겠습니다. 후퇴없이 주님을 붙들겠습니다. 우리가 실패한 자리에서 주님이 역사하실 줄 믿습니다. 아버지 이번주 한동통일동행WEEK를 통해 하나님께서 한동 가운데 새로운 일을 행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북한을 향한 당신의 마음이 온전히 풀어지기를 기도합니다. 당신의 마음을 받은 자들이 북한해방과 복음통일을 위해 용사로 준비되어 지기를 원합니다.

 

주님 홀로 영광 받아 주십시오. 결국엔 모두 주님께 돌아갑니다. 모두 주님의 것입니다. 모든 것을 주님께 돌려드릴 수 있도록 우리를 사용해 주시옵소서. 모든 영광 주님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유일한 소망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