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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끝시간 기도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마태복음 14장 13-21절)

by 버닝우드 2020. 11. 24.

한동끝시간은 한동대학교에서 매일 밤 9시반마다 한동대 재학생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드려지는 예배입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이 땅에 무너진 영역들을 회복하고자 기도 해온 학생들의 귀한 모임 입니다. 매주 월요일에는 북한과 통일을 위해 중보하는 월요끝시간이 드려지고 있습니다.  <월요끝시간 기도회> 섹션에는 필자가 월요끝시간에서 전한 메시지들을 담았습니다.


(마태복음 14장 13-21절)

13 예수께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빈 들에 가시니 무리가 듣고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따라간지라

1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자를 고쳐 주시니라

15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

16 예수께서 이르시되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17 제자들이 이르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니이다

18 이르시되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하시고

19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20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21 먹은 사람은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아멘)

 

[메시지 제목: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온 세상의 주인이시며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역사를 운행하시는 방법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그분은 사람의 머리로 다 헤아릴 수 없는 능력과 지혜로 역사하시며, 하나님 없이는 진리를 깨달을 수도, 구원을 얻을 수도 없는 우리들에게 당신의 놀라운 섭리와 진리를 계시하시고, 은혜를 베푸십니다. 하나님의 구원에 있어서 우리가 그분께 더할 것은 단 1도 없습니다.

 

(출애굽기 14장 13-14절)

13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14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아멘)

 

구원에 있어서 우리가 더하거나 완성해야 될 것은 없습니다. 이미 완성되어 있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선포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이며, 전적인 은혜입니다. 우리가 여전히 불안해하며 두려워하며 여기에 무엇인가 더하려고 할 때, 주님은 우리에게 필요 없다고 하십니다. 가만히 있으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원수는 우리에게 있는 것은 그 무엇이든 빼앗아 가려고 합니다. 자그마한 생명력조차도 남겨두지 않고 강도질하고 흡수해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흘러 넘칩니다. 그분에게서는 그냥 넘치고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그냥 흘러 보내십니다. 우리에게 단 한가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그 은혜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주님, 저는 당신의 은혜가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은혜를 부어 주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은혜로 살아갑니다. 다함이 없는 그분의 은혜와 사랑이 우리의 동력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움직이게 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찬양하고, 또 찬양해도 모자라서, 영원히 당신을 찬양하기로 작정한 이들이 모인 천국은, 한 작가가 묘사하기를, 그분을 찬양하는 노랫소리와 침묵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곳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능력과 지혜와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는 더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역사를 이루시는 방법으로 ‘우리,’ 사람을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구원은 전적인 주님의 공로이지만, 주님은 우리를 내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역사의 현장 속에서 당신의 계획을 이루기 위한 동역자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출애굽기 14장 15-16절)

1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16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행하리라 (아멘)

 

모세에게 본래 무슨 초자연적인 능력이 있었겠습니까? 모세의 지팡이가 무슨 마법 지팡이였겠습니까? 그런데 주님이 명령하십니다.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라.’ 모세가 주님의 명령대로 행할 때 주님이 모세를 통해, 모세의 지팡이를 통해 일하십니다. 주님이 일하십니다. 사람을 통해서.

 

우리가 지난 주에도 묵상했듯이 다니엘이 고백합니다.

 

(다니엘 2장 20-23절)

20 다니엘이 말하여 이르되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할 것은 지혜와 능력이 그에게 있음이로다

21 그는 때와 계절을 바꾸시며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며 지혜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총명한 자에게 지식을 주시는도다

22 그는 깊고 은밀한 일을 나타내시고 어두운 데에 있는 것을 아시며 또 빛이 그와 함께 있도다

23 나의 조상들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이제 내게 지혜와 능력을 주시고 우리가 주께 구한 것을 내게 알게 하셨사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고 주를 찬양하나이다 곧 주께서 왕의 그 일을 내게 보이셨나이다 하니라 (아멘)

 

다니엘은 역사의 주관자 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왕들을 폐하기도 하시고, 세우기도 하시며, 특별히 역사의 현장 가운데 자신에게 지혜와 능력을 주셔서 당신의 뜻을 행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하는 일만 하나님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역사의 현장 가운데서 부르심을 받아 하는 모든 일이 다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해 능력을 베푸시고 기적을 행하실 때, 그 사람을 기억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을 의미하게 될 정도로, 사람의 일은 하나님과 긴밀하게 연결될 때가 있습니다.

 

(사사기 2장 7, 10절)

7 백성이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 일을 본 자들이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 (…)

10 그 세대의 사람도 다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아멘)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해서 일하시기에, 하나님께 쓰임 받았던 여호수아를 잊어버리는 것은 곧 여호수아를 통해 행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잊어버리는 것이었고, 이는 곧 하나님, 그 분 자체를 망각하고 떠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반대로 우리는 성경에 수없이 기록된 찬양들처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일하셨음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분을 찬양하는 고백들을 수없이 듣게 됩니다. 우리가 한동대학교를 하나님의 대학이라고 부르는 것 또한 그러한 맥락 속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초대 총장님, 교수님들, 선배님들을 기억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한동을 위해서 행하신 역사를 기억하는 것이고, 그것은 곧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이 됩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나는 과연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시고 일하시는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는가.’ 그리고 ‘나는 과연 역사의 현장에서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믿음으로 응답하고 있는가.’

 

청년은 항상 자신의 길을 고민합니다. 비전과 진로를 놓고 고뇌합니다. ‘이 길로 가야할까.’ ‘저 길로 가야할까.’ ‘이렇게 가야할까.’ ‘아니면 저렇게 가야할까.’ 그런데 성경을 아무리 읽어도 주님이 우리에게 어떤 직업을 가지라고 점지해주신 적은 없는 듯 합니다.

 

아브라함은 단지 ‘떠나라’는 그 명령 한마디만 붙잡고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갑니다. 야곱의 다른 아들들이 요셉을 애굽에 노예로 팔아버린 사건은 요셉을 국무총리로 만들기 위한 형들의 큰 그림이었을까요? 이스라엘을 학대하던 애굽인을 살해하고 광야로 도망가 40년을 양을 치며 살았던 모세는 나중에 홍해를 가르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이나 했을까요? 선교여행을 하며 텐트를 만들어 팔았던 사도 바울의 직업은 천막 사업가였을까요?

 

성경은 비전을 그렇게 좁게 해석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놀라운 은혜를 주시는 동시에, 당신이 바라보시는 그곳. 그 역사의 현장에 우리를 동역자로 부르십니다. 다들 일할 자리가 없다는데, 주님은 일할 사람이 없다고 하십니다.

 

(누가복음 10장 2절)

2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아멘)

 

배고프고 지친 큰 무리들. 육신도 육신이지만, 무엇보다 영원한 영혼의 굶주림에 지쳐 있는 큰 무리가 예수님께 나아옵니다. 주님이 제자들을 향해 당황스러운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제자들은 당황합니다. ‘저희가 먹을 것도 없는데 저희가 어떻게 줍니까?’ 우리에게도 이런 당황스러움이 있습니다. ‘주님, 저도 가진 것이 없습니다. 저도 없습니다. 제가 어떻게 줍니까?’

 

그때 한 제자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나아옵니다. 그것이 그의 최선이었습니다. 그가 가진 전부였습니다. 주님은 그가 드린 작은 것들로 수많은 사람을 먹이십니다. 주님만이 영원한 생명의 떡이 되신다는 사실을 보여주십니다.

 

이런 질문도 생깁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신데 그냥 스스로 만들어서 나눠 주시지 왜 굳이 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를 받으셨을까?’ ‘몇 명이나 먹는다고.’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항상 우리를 당신의 역사의 현장에 초대하시고, 동역자로 부르십니다. 사람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그 자체로는 보잘 것 없어 보일 지라도, 모세의 지팡이,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통해 일하십니다.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그분이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기도제목]

1.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기를 결단합시다.

하나님은 역사의 주인이십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로 역사를 운행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특이하게도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사람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역사의 현장 가운데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문제는 우리의 마음입니다. 우리의 믿음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이 부담스럽게 느껴 지십니까? 하나님의 위대하심보다, 나의 능력 없음이 더 커 보여서 선뜻 믿음의 행동을 하기가 어렵습니까? 시작은 은혜에서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에게서 무언가를 강제로 빼앗아가거나 강도질을 해가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풍성하시며 흘러 넘치십니다. 우리가 마음을 열기만 하면 은혜를 붓고 붓고 또 부어주시는 분입니다. 끝이 없는 은혜, 한량없는 은혜, 그 은혜에 우리가 감사함으로 나아가길 원합니다. 그때에 주님의 역사로의 초청이 부담으로 여겨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나를 당신의 역사의 주인공으로 세우시기를 원하시는구나.’ ‘나를 주님이 그렇게 생각해주시는구나.’라고 받아들여지길 원합니다. 주여! 우리에게 또 한 번의 은혜, 또 한 번의 기회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새로운 마음을 주시옵소서. 우리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2. 북한과 복음통일을 위해서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우리가 북한과 복음통일을 위해 기도하고, 더 나아가 이 영역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만한 무언가로 순종하는 것이 주님의 일이 될 수 있을까요? ‘주님, 이 일이 의미가 있습니까?’ 라고 질문이 생길 때가 종종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때 제 머리 속에 떠오르는 장면이 있습니다. 먼 미래. 혹은 그렇게 멀지 않은 미래에, 북한의 형제자매들이 우리와 같이 이렇게 기도하는 자리에서 이런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남한에 있는 우리의 형제자매들을 통해서, 그들의 기도와 순종과 헌신을 통해서, 우리가 주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자유를 누리며, 예배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됨을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들 가운데 역사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 장면을 머리 속에 그려 볼 때, 우리가 어찌 기도를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저들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역사에 우리를 사용해달라고 주님께 간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주여 우리를 보내소서! 우리를 사용하소서! 우리를 세워주시옵소서! 우리 함께 주님 이름 부르며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