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끝시간은 한동대학교에서 매일 밤 9시반마다 한동대 재학생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드려지는 예배입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이 땅에 무너진 영역들을 회복하고자 기도 해온 학생들의 귀한 모임 입니다. 매주 월요일에는 북한과 통일을 위해 중보하는 월요끝시간이 드려지고 있습니다. <월요끝시간 기도회> 섹션에는 필자가 월요끝시간에서 전한 메시지들을 담았습니다.
(히브리서 11장 1-2절)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메시지 제목: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
철없던 중고등학생 시절, 한가지 마음에 품고 있던 의문이 있었습니다. 반항심 가득한 시기, 부모님과 교회에 대한 불만이 또 다른 모습으로 표출된 것이었겠지만, 저는 나름 그런 고민들을 신앙적인 질문으로 승화시키곤 했습니다. 여러가지 질문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 하나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데는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가?’ ‘태초에 아담이 죄를 지었을 때, 그때 예수님이 오셔서 인간의 죄를 해결해 주셨다면, (아니 심지어 지금도 주님이 빨리 재림해서 역사를 완성하신다면) 그렇게 수많은 인간이 고통을 당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왜 몇 천년 후에나 오셔서 수많은 사람들이 죄를 짓고, 고통당하고, 죽은 후에 오신 것이었을까?’
저는 이 질문에 대해 완벽한 답변을 가지고 있지는 못합니다. 다만, 적어도 지금 제가 알고 있는 것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네 역사 가운데 당신의 뜻을 이루시고 계시하실 때는, 그 분은 시간에 전혀 갇혀 있지 않은 초월자이시기 때문에, 그분의 뜻이 우리 역사 가운데 계시되기 위해서는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은 그분께는 카이로스의 시간, 하나님의 정확한 때에 진행되는 일들도, 크로노스를 살아가는 인간의 입장에서는 시간이 걸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는 반드시 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당신의 역사를 반드시 이루십니다. 비록 우리 때에 그 일들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그 일이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한 가지 일을 기다리는 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리라는 그 약속을 간절히 기다리고 고대합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 일이 이루어질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았던 사람들에 대한 책입니다. 믿음의 선진들은 모두 세대를 거듭하며 믿음의 눈으로 이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바라보았고, 기다렸고, 대부분이 그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믿음 장’ 이라고도 부르는 히브리서 11장에는 성경에 등장하는 믿음의 선배들의 이야기들이 줄을 잇습니다. 예수님의 희생을 예표하는 피의 제사를 믿음으로 드리고 가인에 의해 순교 당한 아벨, 믿음으로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께 들림 받은 에녹, 보이지 않는 일, 홍수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를 받고 120년간 홍수를 준비한 노아, 75세까지 자녀가 없었음에도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며, 이후 100세에 기적으로 얻은 독자 아들 이삭을 예수님처럼 희생하고자 했던 아브라함, 이집트 바로 왕의 압제 속에서 공주의 아들로 잠시 낙을 누리기보다, 하나님의 백성의 정체성으로 영원한 자유를 누리고자,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홍해를 건넌 모세, 이스라엘이 여리고를 점령할 것을 믿음으로 예견하고 정탐꾼을 도왔던 기생 라합…
성경은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간절히 바라며, 믿음으로 자신의 인생을 던졌던 사람들의 이야기로 넘쳐납니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미처 다 소개하지 못한 믿음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뒤로 하고, 이들의 이야기를 이렇게 요약합니다.
(히브리서 11장 32-40절)
32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및 사무엘과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33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34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35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36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37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38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39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40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멘)
오늘 본문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북한과 통일의 영역에 있어서 이 믿음의 원리는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탈북민,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하여, 자유의 땅 대한민국에 건너온 우리 동포들입니다. 그들이 바로 우리가 믿음으로 바라는 통일의 실상이요.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입니다.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목숨을 걸고 대한민국으로 건너온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사람이라면 평정심을 유지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을 수없이 마주하게 됩니다. 배고픔을 면하고자 탈북을 한 많은 여성들이 인신매매로 인해 중국 땅에서 물건처럼 팔려 다닙니다. 불과 몇 십 만원에 팔리는 여성도 있다고 합니다. 아이도 낳고, 음식도 만들고, 들판에서 노예처럼 일하는 값이 그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여자가 귀한 지방에서는 한 여자를 공동구매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습니다.

휴전선을 하나 맞대고 있을 뿐이지만, 대한민국으로 오는 길은 참으로 멀고 험합니다. 광활한 중국 대륙을 가로질러 국경까지 가야합니다. 중국 국경을 넘어 제3국을 거쳐서 한국으로 오게 됩니다. 국경에는 삼엄한 경비가 있습니다. 초소가 없는 길을 고르다 보면 길이 없는 곳을 골라서 갑니다. 열 시간이고 몇 시간이고 걸어 산을 넘고 밀림을 지나고 강을 건넙니다. 그 과정에서 목숨을 잃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무서운 것은 공안에게 붙잡혀 강제로 다시 북송 되는 것입니다. 원래는 조국을 배반했던 강제북송자들은 무조건 처형이지만 현재는 무조건 처형은 아닙니다. 처형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대개 노동단련대와 같은 수용시설로 보내집니다. 그곳에서 그들이 겪는 일들은 아마 일일이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다 아실 것입니다. 굶주림, 구타, 욕설, 모욕, 고문, 여성들의 경우 성폭행, 임신한 여성의 경우 강제 낙태를 통한 태아살해… 그들은 처참한 인권유린을 당합니다.
이런 그들이 생사를 넘나들며 제3국까지 통과하여 정해진 절차를 거쳐 오게 되는 것이 대한민국입니다. 탈북동포들에게 대한민국은 자유의 땅이요 축복의 땅입니다. 우리에게는 현실인 이 땅이 그들에게는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의 증거입니다.
그들이 이 땅에 발 딛기까지 그들이 혼자인 것만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들을 북한에서 구출해내기 위해 목숨 걸고 탈북 사역을 하는 분들도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장애를 가진 몸으로 중국에서 탈북난민들을 한국으로 탈출시키셨던 김동식 목사님은 2000년 1월 북한공작원들에 의해 납치되어 실종됩니다. 그 후 6년이 지나서야 알려진 행방은 납치된 다음 해인 2001년 평양에서 영양실조와 고문 후유증으로 감옥에서 순교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지금도 북한에는 북한을 위한 사역을 하다 붙잡혀 억류 중인 6명의 대한민국 국민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도대체 무엇을 바라며 이 위험한 사역에 몸을 던진 것이었을까요? 그들이 바로 오늘 본문이 말하는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목숨을 걸고, 심지어 가족들까지 잃어버리며 축복의 땅을 밟았지만, 그렇다고 탈북동포들의 생활이 마냥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상당 수의 동포들이 대한민국에 정착한 이후에도 빈곤층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나 경제적인 문제보다 더 힘겨운 것은 인간적인 그리움이라고 합니다. 낯선 땅에서의 차별과 외로움 속에서 동포들은 자신의 고향과 부모형제가 사는 곳을 여전히 그리워 합니다. 인생은 나그네 길이라지만, 동포인 대한민국에서조차 그들은 여전히 나그네인 것일까요? 그들은 누구일까요?
이호 목사님은 <북한을 자유케하라> 라는 책에서 ‘탈북자, 그들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장진성 시인의 시를 소개합니다.
탈북자! 그 또 다른 이름은 바로 승리이다. 우리의 탈북은 전 세계에 보여준 북한주민들의 항거였으며 그 땅에 묻은 사람들의 복수였다. 독재권력과 인간과의 치열한 전쟁이었으며 살아서 온 인간의 승리였다. 하기에 나는 탈북자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내리고 싶다.
탈북자 / 우리는 먼저 온 미래
언젠가 오고야 말 통일을 / 미리 가져온 현재
북은 과거 / 남은 내일
그 경계선을 지우며 / 분연히 일어선 인간 38선
네, 그렇습니다. 시인의 고백처럼, 탈북 동포들은 미리 다가온 통일이요. 한발 앞서온 미래입니다. 그들이 바로 우리가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통일의 증거입니다. 이 땅에서 그들이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도록 돕는 일은 앞으로 다가올 통일을 준비하는 연습입니다. 대부분의 탈북민들은 어렵게 번 돈을 북한의 가족들에게 송금한다고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핵개발이나 군사비로 전용될 염려가 없는 진정한 인도주의 대북지원입니다. 북한을 돕는 최고의 방법은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는 탈북동포들을 돕고 지원하는 것입니다.
독재정권의 압제에도 살아남아 이 땅에 온 그들이 바로 통일의 증거입니다. 온 몸으로 고난을 겪으며 온 몸으로 북한의 진실을 알린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사람들입니다.
[기도제목]
1. 미리 다가온 통일, 탈북 동포들을 위해서 기도합시다.
우리는 북한동포들을 위해서,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들의 영구적인 자유를 위해서 통일을 바라며 기도합니다. 그런데, 이미 우리에게는 우리가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그 증거가 있습니다. 미리 다가온 통일, 탈북 동포들입니다. 2020년 9월 기준으로 국내 거주하는 북한이탈주민의 수는 3만 명이 넘습니다. 우리가 정말로 북한과 통일을 위해서 기도한다면, 우리는 탈북동포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들을 도와야 합니다. 방금도 나누었듯이 탈북동포들은 한정적이긴 하지만 여전히 북한에 있는 가족들에게 연락이 닿을 수 있고, 자신이 남한에서 번 돈으로 북에 있는 가족들을 지원하기도 합니다. 통일이 어떻게 올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가 민주적 절차를 통해 남과 북이 하나될 가능성을 믿는다면, 북한주민들의 의지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북한주민들의 의지는 이미 목숨 걸고 대한민국에 와서 자유의 체제를 먼저 체험한 탈북동포들을 통해 전달되고 형성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이미 먼저 온 다가온 통일의 증거인 탈북동포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은 돕는 것은 통일과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닙니다. 너무나 중요합니다. 우리가 탈북동포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그들이 믿음으로 목숨 걸고 건너온 대한민국 땅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대한민국 국민들이, 특별히 한국교회가 탈북민 사역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섬길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2. 탈북사역자들을 위해서, 억류된 6명의 우리 국민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탈북동포들이 대한민국이라는 축복의 땅을 밟기까지, 그들이 홀로이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은 탈북사역자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안위와 목숨을 내어놓고 사역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한 영혼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한 영혼이라도 더 예수님의 이름을 부를 자유를 얻도록 하기 위해, 그들은 저들을 탈출시키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고, 이 위험한 사역에 직접 뛰어듭니다. 북한에 남겨진 부모님, 형제, 자매, 심지어 자녀들 때문에 밤에도 잠 못 이루고 눈물을 흘리는 탈북동포들을 위해 사역합니다. 우리가 탈북사역자들을 위해서 기도합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헌금이 있다면 적은 금액이어도 그들을 도웁시다. 특별히 현재 북한에 억류된 6명의 대한민국 국민들이 있습니다. 이 중 대부분이 북한을 위한 사역을 하다 붙잡힌 분들입니다. 선교사님들도 있습니다. 우리가 이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예수 이름을 증거하기 위해서는 로마 감옥에 갇히기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사도 바울처럼, 주님께서 이들을 지켜 주시도록, 하루 빨리 자유의 몸이 될 수 있도록, 풀려날 수 있도록. 탈북 사역자들과 억류된 선교사들을 위해서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마무리 기도]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브리서 12장 1-2절)
주님 우리가 믿음으로 당신의 약속을 바라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우리보다 앞서 달려갔던 믿음의 선배들의 순종과 헌신과 희생과 눈물 어린 고난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믿음의 길 끝에서 서 계신, 믿음을 시작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봅니다.
주님, 우리가 통일의 영역에 이 믿음의 원리를 적용합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통일을 먼저 앞당겨온 믿음의 증거가 바로 탈북동포들입니다. 주님 그들을 위로하시고 그들을 축복하여 주십시오. 그들을 고통과 고난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주님께서 그들을 위로하여 주십시오. 한국교회가, 우리가 먼저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힘닿는대로 그들을 도울 수 있도록 우리에게 선한 의지를 일으켜 주십시오. 당신의 마음을 부어주십시오. 그래서 탈북동포들을 통해 북한사회에 자유통일, 복음통일을 향한 열망과 의지가 자라나도록 역사하여 주십시오. 그들을 구출하기 위해 애쓰는 사역자들을 축복하여 주십시오. 그들을 지켜 주십시오. 악한 자가 머리털하나 건드리지 못하도록 그들을 보호하여 주십시오. 억류된 6명의 대한민국 국민들이 하루빨리 석방될 수 있도록 인도해주십시오.
역사의 주인이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의 기도를 인도하시고 가르치시는 주님을 의지합니다. 우리에게서 받으실 필요가 없으시지만 우리를 통해 역사하시는 주님을 예배합니다. 모든 영광을 주님께 올려드리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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