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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끝시간 기도회

대서사(大敍事) (요한계시록 21장 3-8절)

by 버닝우드 2020. 12. 7.

한동끝시간은 한동대학교에서 매일 밤 9시반마다 한동대 재학생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드려지는 예배입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이 땅에 무너진 영역들을 회복하고자 기도 해온 학생들의 귀한 모임 입니다. 매주 월요일에는 북한과 통일을 위해 중보하는 월요끝시간이 드려지고 있습니다.  <월요끝시간 기도회> 섹션에는 필자가 월요끝시간에서 전한 메시지들을 담았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 3-8절)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5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아멘)

 

[메시지 제목: 대서사(大敍事)]

 

한 가난한 대학생의 인생역전 스토리, 두 남녀의 러브 스토리, 드라마 촬영 현장의 비하인드 스토리… 사람들은 스토리를 좋아합니다.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스토리입니다. 사람들은 자신만의 인생스토리를 만들어 가기를 원하며, 또한 누군가의 스토리에 매료되기도 합니다. 심지어 한동안 입시, 취업현장에서 유행했던 말도 ‘흩어진 점과 같은 커리어가 아니라,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어라’는 것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성경도 하나의 스토리입니다. 물론 성경은 각기 다른 장르로 분류되는 66권의 책이 종합된 문서이지만, 큰 맥락에서 성경도 하나의 스토리입니다. 성경이 만일 스토리가 아니라 단순히 종교적 규율만 나열한 법조문이었다면 성경 읽기는 훨씬 더 힘들었을 겁니다. 많은 분들이 성경통독에 도전하시면서 이야기로 구성된 창세기와 출애굽기는 재미있게 읽으시는 반면에, 율법조문이 많이 등장하는 레위기에서부터 성경통독을 포기하는 일이 잦은 것처럼 말입니다.

 

성경은 하나의 거대한 내러티브(narrative)입니다. 성경에는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스토리들이 있습니다. 역사 속에 존재했던 한 개인의 인생 스토리가 있습니다. (성경은 항상 개인에서 시작합니다). 그런데 한 개인의 기구한 인생사에 불과했던 스토리는 한 가정의 스토리, 가문의 스토리가 되고, 여러 세대를 거쳐 한 민족의 스토리가 되며, 한 국가의 스토리, 그리고 마침내 인류 전체의 이야기가 됩니다. 그리고 이 거대한 내러티브는 B.C.와 A.D.를 나눈 한 사람을 중심으로 흐르고 있으며, 각기 따로 흐르는 것 같지만 결국은 하나로 연결되는 대서사(大敍事)와도 같은 이 스토리를 우리는 ‘His-tory’ (그의 이야기) 라고 부릅니다.

 

성경은 또한 계시적인 책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계시적인 책이라고 할 때 주목해야할 중요한 점은 바로 성경이 시대를 초월하고, 언어와 문화를 초월해서, 하나님의 진리, 그분의 놀라운 스토리를 우리에게 계시한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의 이야기들, 그 스토리가 도대체 지금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질문할 수 있습니다. ‘2천 년 전에 유대 땅에서 30여년 짧은 생애를 십자가에서 마감한 한 유대인 청년의 이야기가 도대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질문 말입니다. 특히나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의 영향 아래에서, 어떤 이들은 전통적인 거대담론과 기독교적 내러티브를 거부하는 태도를 취합니다. 그들은 ‘기독교적 스토리는 진리가 아니라, 그것을 믿는 대중을 구조적으로 통제/억압하고 착취하려는 기득권층의 권력쟁취수단(power game)’ 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누구든지 마음 문을 열고, 겸손히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이 책을 읽을 때, 우리는 시대와 문화를 초월하며, 역사를 관통하여, 제1차 독자를 넘어서서, 오늘날도 우리에게 동일하게 말씀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는 우리의 마음에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라고 울부짖었던 가인의 외침이 와서 부딪친다면 하나님은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끊임없이 음행과 우상숭배를 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마치 나를 향한 음성으로 들린다면 하나님은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손가락질하고 비판하는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 ‘민중이 원하는 것이 선이고 정의’라며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쳤던 유대인들의 모습이 오늘날 나의 모습과 오버랩(overlap) 되어 보여진다면 하나님은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분의 스토리(history), 그분의 이야기가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이런 내러티브는 쉽게 잊혀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영혼 깊이 새겨져서 우리 인생에 진정한 삶의 의미를 부여합니다.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인간의 인생에 나침반이 되어, 삶의 지침과 방향성을 제시합니다. 길어야 일백 년, 쉬이 사라져 버리는 이슬과 같은 짧은 인생에서, 자아에 대해서만 생각하는 자기중심성에 매몰되기 보다는, 역사를 완성해가시는 역사의 원 저자(author)의 의도와 계획을 이해하며 믿음과 순종으로 ‘History’ 라는 그림에 유의미한 퍼즐조각이 됩니다.

 

(서론이 길었습니다만,) 이 하나님의 대서사(大敍事)의 정점에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요한계시록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교회가 극심한 박해를 받던 시기, 아마도 로마 제국의 황제 네로의 통치 마지막에 가까운 시기에 기록된 것으로, 당시 소아시아에 있던 일곱 교회들에게 전하는 편지의 형식으로 시작하게 됩니다. 당시 일곱교회 교인들 중 일부는 이미 박해 가운데 있었고, 더 많은 박해가 임하게 될 것이었으며, 이단적인 가르침과 식어버린 열정으로 그리스도인들은 당시 이교적인 사회와 타협하도록 유혹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도 요한은 각 교회의 상황에 따라 책망과 위로를 전하며, ‘그리스도께서 모든 상황을 알고 계시며, 그들의 승리는 어린 양의 보혈을 통하여 이미 보장되었고, 결국에는 그리스도께서 사탄과 그 모든 무리를 멸하시기 위해 곧 오실 것’이라는 소식을 상징적인 언어로 기록하게 됩니다.

 

그러나 앞에서도 길게 설명 드렸듯이 이 책의 계시와 교훈은 결코 1세기 교회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모든 믿는 세대에게 적용되는 진리입니다.

 

특별히 요한계시록에 상징적으로 등장하는 ‘적그리스도 체제’를 해석하는 문제에 있어서, (1) 적그리스도를 계시록이 기록될 당시 로마를 지배했던 네로 황제에 국한해서 볼 것인가, (2) 예수님의 재림 바로 직전에 있을 일들로 볼 것인가, 혹은 (3) 1세기부터 재림 때까지의 역사로 볼 것인가, 아니면 (4) 순전히 영적인 상징으로만 볼 것인가에 따라 과거주의, 미래주의, 역사주의, 이상주의, 4가지 접근방식으로 견해가 나누어 집니다. 물론 학계의 통설은 이 네 견해를 바르게 통합한 것이 가장 진리에 근접하다는 견해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감히 적그리스도 체제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것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특별히 북한을 위해 기도하는 우리들이 ‘김씨 정권을 성경적/계시적 관점에서 바라볼 때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답변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국경을 마주 대하고 있는 북한은 현재 남아 있는 최악의 독재국가, 공산주의/전체주의 체제입니다. 심지어 학자들은 더 이상 북한체제를 사회주의/공산주의 체제로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북한체제가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통해 ‘유사종교 집단화’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심지어 영어로 ‘Jucheism’ 이라고도 불리는 주체사상은 세계 10대 종교에 포함될 정도입니다. 이유는 2천 만 명이 넘는 국민들이 강제로 이 사이비 종교를 믿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주체사상은 유교/주자학과 공산주의의 악마적 교배입니다. 스탈린주의로 요약되는 집단농장, 생산수단 국유화, 출신성분 신분제, 공포정치, 지도자 우상화, 핵폭탄 개발, 반대파 숙청, 역사왜곡 등을 공산주의 정책을 답습합니다. 그리고 조선시대 봉건적 충효사상을 이용하여 수령 절대주의를 정당화합니다. ‘사람이 먼저다’ 라는 사람 중심의 사상을 앞세우지만, 결국 주체사상의 핵심은 김일성 유일사상 10대 원칙입니다. 주체사상에서 사람은 개인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집단을 표상하며, 개인은 최고지도자와 집단적 목표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합니다. 사람을 숭배하는 사상의 끝인 셈입니다.

 

계시록을 읽다 보면 여러 가지 상징적인 숫자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이호 목사님은 <북한을 자유케하라>라는 책에서 사이비 종교 집단이 된 북한에도 불길한 배교의 상징들이 있다며 이렇게 소개합니다.

 

1938년 9월 9일: 27회 장로회 총회에서 신사참배 결의

1948년 9월 9일: 북한 공산정권 수립

1959년 9월 9일: 북한에서 교회 폐쇄

1998년 9월 9일: 김정일 정권 수립

 

하나님을 버리고 사람을 신으로 섬기기로 한 날짜들이 이렇게 신기하게 겹칩니다. 또 다른 숫자는 666입니다.

 

(요한계시록 13장 13-18절)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짐승 앞에서 받은 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그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한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보라 그것은 사람의 수니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

 

요한계시록에서 사탄의 대리인인 적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숫자인 666이 북한에서는 김정일에게 적용됩니다.

 

1999년 7월 6일 북한의 <로동신문>에는 “위인전설 666”이라는 기사가 실립니다.

"6을 세 번 곱하면 216, 즉 김정일의 생일인 2월 16일이 나오고, 북한이 조선반도에서 6번째로 세워진 국체이다.”

“1998년 7월 최고인민회의 10기 대의원 선거에서 김정일이 뽑힌 선거구가 666호였다.”

 

기독교인들은 누구나 꺼려하는 금기의 수를 북한은 아예 애용합니다. 그렇다면 김씨 일가가 바로 계시록이 말하는 적그리스도일까요? 물론 특정 사실을 본문에 끼워 맞추는 식의 해석은 피해야 합니다. 성경의 상징은 상징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북한체제와 적그리스도 체제의 특성이 매우 유사하다는 것입니다. 불이 하늘에서 내려오게 하듯 핵무기를 개발하고, 첫 번째 짐승을 위한 우상을 만든 두 번째 짐승처럼, 김정일은 유일사상 10대 원칙으로 김일성을 신격화 했습니다. 그의 시체를 우상화하는 금수산 기념궁전을 만들었고, 영생탑을 세웠습니다. 김일성 절대주의에 동조하지 않는 자들은 계시록의 짐승처럼 닥치는 대로 죽였습니다.

 

결국 계시록의 스토리는 선(善)과 악(惡)의 대결로 이어집니다. 성경에, 이 세상 최후의 악으로 기록된 적그리스도의 본질이 김씨 정권의 악의 본질과 비슷하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하나님을 끝까지 대적하는 강력한 전체주의 체제. 스스로 신이 되는 것도 모자라 기독교를 말살하며 온갖 악행을 저지른 김일성 일가에 대해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지 여러분은 듣고 계십니까?

 

(요한계시록 2장 7절)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

 

그러나 성경의 스토리는 악의 묘사하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이기는 자. 결국 적그리스도 체제를 이기는 자들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요한계시록 14장 1-5절)

1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

2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 소리와도 같고 큰 우렛소리와도 같은데 내가 들은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이 그 거문고를 타는 것 같더라

3 그들이 보좌 앞과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십사만 사천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4 이 사람들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에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5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1)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 즉, 하나님 앞에 사생활이 깨끗한 자. 그리고 (2)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 즉 지금도 살아 계셔서 우리를 붙드시고 인도하시는 주님과 실제로 동행하는 자. 마지막으로 (3)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 즉 진실하고 진리를 말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 이런 자들을 두고 주님은 ‘이기는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마지막 시대, 세상을 이기는 자들입니다. 적그리스도 체제를 이기는 자들입니다.

 

특별히 한국적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성경적 스토리에 기반해서 진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는 북한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북한에 풍선을 날리는 이들이 있습니다. 풍선을 보낸 이들은 북한당국에 의해 살해위협을 받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우리나라에서는 최근에 대북전단 살포하는 행위를 형사적으로 처벌하는 법안까지 발의되어 통과를 앞두고 있습니다. ‘이렇게 위험한데 왜 굳이 목숨 걸고 이런 일을 하느냐’는 질문에 한 탈북동포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제가 북한을 탈출해서 한국에 오려다가 제3국의 감옥에 여러 번 갇혔습니다. 그때 성경을 읽고 깜짝 놀랐습니다. 성경 안에 북한을 무너뜨릴 방법이 있더라구요. 사사기에 보니 기드온이 밤에 우상들을 부수었습니다. 그걸로 끝장이 났어요.

 

북한은 김일성 일가를 우상으로 섬기는 종교집단입니다. 종교집단이니 종교적으로 처리해야지요. 성경 그대로 우상을 부수면 끝납니다. 북한주민들이 신으로 받드는 김일성 일가가 사실은 어떤 자들인지를 그대로 알려주면 그날로 북한은 끝납니다.”

 

아무리 강해도 거짓은 거짓입니다. 아무리 약해도 진실은 진실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적그리스도 체제는 거짓 우상 체제입니다. 그리스도를 모방하지만 거짓입니다. 사탄의 별명은 거짓의 영, 거짓의 아비입니다. 어느 선교사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지역별로 문화권별로 지배력을 행사하는 악한 영들이 다르다고 하였습니다. 어떤 지역은 음란의 영이 강하게 역사하고, 어떤 지역은 분열의 영이 강하게 역사합니다. 이슬람 지역은 무엇인지 아십니까? 두려움의 영, 공포의 영입니다. 그렇다면 공산주의 체제는 무엇일까요? 바로 거짓의 영이라고 합니다.

 

성경의 끝. 이 거대한 계시적 스토리의 끝에서, 성경은 거짓체제, 적그리스도 체제는 결국 멸망하고 무너질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셔서 하나님의 사람들을 구원하시고, 끝까지 그분께 대적하는 악한 체제를 심판하시며, 하나님의 대서사, 인류의 역사를 완성하실 것을 미리 예언합니다.

 

(요한계시록 18장 2절)

2 힘찬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우리는 이 스토리가 한반도에도 적용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이 악한 체제를 대적하며 기도합니다. 거짓된 우상숭배 체제가 무너지기를 기도합니다. 성경이 악이라고 선언한 악과는 타협 없이 우리의 신앙을 지키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하나씩 타협하기 시작하면 결국 모든 것이 무너집니다. 우리는 이기는 자입니다.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결국은 대한민국 사람들이 북한 동포들을 독재자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는 도덕적, 헌법적 결단을 내리지 못하면, 우리는 우리 동포들이 압제 당하고 있는 현실을 묵인하는 것과 같고, 나아가 통일비용, 전쟁위험 등의 이유를 들어 북한의 독재체제가 유지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이 독재체제를 보장해주기 위해 달러와 물자를 퍼주고 국제사회에서 이 악한 체제의 변호사 역할을 해왔습니다. 정치범 수용소에서 2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짐승만도 못한 대우를 받으면서 죽어가고 있다는 증언과 사실을 알면서도 말입니다. 이것은 불의를 넘어 대한민국 사람들이 김정은과 반인륜 범죄의 방조자, 공범자, 종범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준비하는 한국교회와 우리가 통일의 영역에서 함께 기도해야 할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원천 봉쇄하는 이 악한 체제, 적그리스도 체제가 무너지는 것입니다. 작고 약하지만 진실을 외치는 입술, 그리고 오늘 우리의 기도를 통하여 당신의 대서사 놀라운 이야기를 결국에 완성하실 주님을 함께 바라보며 나아가길 소망합니다.


 

[기도제목]

 

1. 북한에 세워진 적그리스도/전체주의 체제가 무너지도록 기도합시다.

 

2. 대한민국 국민들이 북한체제의 본질을 깨닫고 악과 타협없이 북한해방을 위해 도덕적, 헌법적 결단을 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