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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끝시간 기도회

주께서 (다니엘 1장 1-2절)

by 버닝우드 2020. 11. 18.

한동끝시간은 한동대학교에서 매일 밤 9시반마다 한동대 재학생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드려지는 예배입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이 땅에 무너진 영역들을 회복하고자 기도 해온 학생들의 귀한 모임 입니다. 매주 월요일에는 북한과 통일을 위해 중보하는 월요끝시간이 드려지고 있습니다.  <월요끝시간 기도회> 섹션에는 필자가 월요끝시간에서 전한 메시지들을 담았습니다.


(다니엘 1장 1-2절)

1 유다 왕 여호야김이 다스린 지 삼 년이 되는 해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을 에워쌌더니

2 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 그릇 얼마를 그의 손에 넘기시매 그가 그것을 가지고 시날 땅 자기 신들의 신전에 가져다가 그 신들의 보물 창고에 두었더라

 

[메시지 제목: 주께서]

 

교회에서, 그리고 크리스천들 사이에서는 이런 표현을 자주 사용하곤 합니다. ‘마지막 시대,’ ‘종말,’ ‘우리는 마지막 시대를 살고 있다.’ 비슷하게, 세상 사람들은 너무나 혼란스럽고 혼탁한 세태를 풍자하면서 ‘말세’ 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한편, 많은 사람들이 ‘마지막 시대,’ ‘종말’ 과 같은 단어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이런 단어들이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단어들이 근거 없이 사람들에게 공포심을 조장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사람들의 마인드는 조금 달라야 합니다. 크리스천은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역사에는 시작과 끝이 있으며, 이 역사를 시작하신 분이 이 역사를 끝내신다는 것입니다. 종말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역자들, 설교자들이 이제 교회가 ‘전세계적 바벨론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고 합니다.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다릅니다. 빠르게 변동하고 진동하는 이 땅에서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아야 할까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오늘은 <주께서> 라는 제목으로 메시지를 짧게 나누고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1) 주께서

 

오늘 본문의 배경은 바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 이스라엘의 멸망, 그리고 이어지는 바벨론 포로기 입니다. 이스라엘 귀족 출신으로 추정되는 다니엘의 이름의 뜻은 흥미롭게도 “하나님은 나의 심판자, 재판관이시다” 입니다. 이스라엘은 바벨론 제국에 의해 침공당하고 멸망합니다.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것은 바벨론입니다. 그런데 다니엘서의 시작 부분인 오늘 본문 2절은 다음과 같이 시작됩니다.

 

(다니엘서 1장 2절)

2 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 그릇 얼마를 그의 손에 넘기시매…

 

다니엘서는 이스라엘의 멸망이라는 역사적, 정치적 현상 뒤에 그것을 넘어서는 궁극적인 요인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멸망한 사건은 단지 군사적, 정치적 요인들만 분석해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가장 궁극적인 제1원인으로서 하나님이 이 나라들의 역사에서 활동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현상만을 보고 역사를 이해하지만, 다니엘은 그것을 넘어서는 관점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주께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의 손에 넘기셨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읽은 책에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1차원의 존재는 2차원을 이해할 수 없고, 2차원의 존재는 3차원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3차원의 존재는 4차원을 이해할 수 없고, 4차원의 존재는 5차원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더 높은 차원의 사건이 더 낮은 차원의 사건의 원인이 됩니다. 즉, 3차원 혹은 4차원에 갇힌 존재인 우리가 다 알 수는 없지만, 가장 높은 차원에 계신 주님이 역사를 운행하시고 다스리시고 세상을 움직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역사관은 크리스천의 정치관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오늘날 믿는 자들 가운데 널리 퍼진 생각 중에는 이런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는, 크리스천은, 일체 정치적 발언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 주장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논점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말은 맞는 말일 수도 있고, 동시에 틀린 말일 수도 있습니다. 가장 흔한 예시 중 하나가 히틀러에게 침묵했던 다수의 독일교회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모든 영역은, 모든 주권은 다 주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주님이 다스리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정치영역에 대해 일체 발언을 하여서는 안 된다는 이들은 크리스천이 특정 정치논리에 매몰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 줍니다. 단순히 정치적인 발언을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예수님보다 먼저 와서 예수님의 오실 길을 준비하며 세례를 베풀었던 세례 요한은 헤롯이 자기 형의 아내를 빼앗은 것을 공적으로 비판하는 발언을 하다 목이 베어 죽습니다. 다니엘, 에스겔, 예레미야, 성경에 등장하는 모든 선지자들이 목숨을 걸고 외쳤던 예언은 하나같이 왕들, 나라들, 제국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어떻습니까? 십자가에서 처참히 죽으신 예수님의 죄목은 로마황제에 대한 반역죄였습니다. 예수님을 믿다가 극형에 처하여 죽은 수많은 초대교회 신자들의 죄목 또한 반역죄였습니다. 우리의 신앙고백은 변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변하여 우리의 신앙고백이 죄가 될 때 그것이 어찌 정치적 발언이 아닐 수 있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하나님을 역사의 주인으로, 모든 영역을 다스리시는 주권자라고 믿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지 않는 자는 그가 아무리 하나님, 예수님을 비롯한 신앙용어를 많이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세속적 정치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한낱 정치적 반역자로 십자가에서 처참히 죽은 줄 알았던 한 청년의 죽음, 이 사건이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구속사의 가장 위대한 사건이었다는 것입니다. 누가 알았겠습니까? 누가 이해했겠습니까? 그러나 역사의 주인, 모든 영역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은 오늘도 역사를 운행해 가십니다. 여전히 다스리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이 사실을 믿으십니까?

 

(2)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

 

그러나 본문에서 ‘주께서’ 라고 시작되는 말씀은 이스라엘로서는 결코 달갑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심판의 내용이었기 때문입니다. 역사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반역과 불순종을 심판하십니다. 철저히 심판하십니다. 황폐한 땅이 될 때까지, 에스겔의 마른 뼈가 될 때까지 심판하십니다.

 

그 방법은 참 잔인합니다. 그 주변국들, 이방나라들을 통해서 심판하십니다. 그들이 이스라엘을 이기고 승리합니다. 이스라엘은 수치심과 굴욕감에 완전히 무너지고, 이방 나라들은 우쭐해하며 이스라엘을 모욕하고 자신의 우상에게 영광을 돌립니다.

 

그런데 여러분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에스겔서를 보면 24장까지는 이스라엘의 심판에 대한 말씀이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25장부터는 갑자기 이스라엘을 짓밟았던 이방나라들, 암몬, 모압, 세일, 에돔, 블레셋, 두로, 시돈, 애굽, 심지어 최종적으로는 바벨론에 이르기까지 모든 왕들, 모든 나라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선포됩니다. 결국은 그 어느 나라도, 그 어느 권력도, 그 어느 누구도 감히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없는 것입니다. 모두 심판 당합니다. 그 누구도 그분의 심판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이 가운데 반복적으로 선포 되어지는 구절은 이것입니다.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결국 세상에는 영원한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영원할 것처럼 믿었던 것들도 진동하고 흔들립니다. 잠언의 말씀처럼 사람에게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섭니다.

 

(3) 바벨론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이 시대는 전세계적인 바벨론 시대로 접어듭니다. 우리가 믿었던 많은 것들이 흔들리고 뿌리째 뽑히기도 하고 세상은 격동하고 진동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부흥을 소망합니다. 물이 바다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지식이 온 세상에 가득차는 대부흥을 꿈꿉니다. 하지만 바벨론 시대의 현안은 부흥이 아닙니다. 바벨론 시대의 현안은 ‘생존’이 됩니다. ‘어떻게든 살아남으라!’ ‘포로가 되든, 노예가 되든, 바벨론 왕의 신하가 되든 어떻게든 살아남으라!’ ‘어떻게든 살아 남아서, 바벨론에서 뿌리를 박고 집을 짓고 자녀를 낳고 살아가라. 남은 자(remnant)가 되어라. 그분의 약속을 기다리면서.’

 

바벨론 시대 우리가 소망하는 바는 우리가 또 한 명의 다니엘이 되는 것입니다. 또 한 명의 에스더가 되는 것입니다.

 

(에스더 4장 14절)

14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만의 악법이 통과되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대량학살을 당할 위기에 처했을 때, ‘죽으면 죽으리라’ 라는 고백으로 왕에게 나아갔던 에스더처럼. 당시에는 세상의 중심이었던 바벨론 제국의 한복판에서 하나님의 초월적인 역사와 주권을 드러냈던 다니엘처럼. 마지막 바벨론 시대에 교회는 또 다른 다니엘, 또 다른 에스더를 필요로 합니다. 그런 자들을 통해 하나님은 가장 처참하고 어두운 시대 속에서도 부흥의 역사를 일으키시고 당신의 영원한 뜻을 여전히 이루어 가십니다.

 

(4) 끝이 있다

 

마치 엊그제 시작한 것 같은 이번 학기도 12주차에 들어서면서 어느새 끝을 바라보며 달려가고 있습니다. 심지어 우리의 학기조차도 이것을 시사합니다. 여러분, 역사에는 분명이 끝이 있습니다. 종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진동하는 마지막 시대, 마지막 때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때 우리가 중심을 지키고 바라보아야 할 것, 기다려야 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아까 에스겔 말씀이 이스라엘을 향하여, 그리고 이방나라들을 향하여 철저한 심판을 선포하고 있다고 말씀드렸지만, 한가지 말씀드리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회복’에 대한 약속입니다. ‘영원히 다스리는 다윗’을 보내서 완전히 회복시키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것이 구약시대에 선포되어진 무서운 심판의 끝에서 선포되어진 말씀이요. 미래를 향한 청사진이었습니다. 구약은 약속입니다. 그들은 무엇을 기다렸습니까? 메시아가 올 것을 기다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기다렸습니다. 메시아!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리라! 그것이 구약시대의 바벨론을 사는 이들이 간절히 기다린 약속이었습니다.

 

우리는 신약시대의 바벨론을 살고 있습니다. 세계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큰 성 바벨론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고대하는 바 신약의 약속은 무엇입니까?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 구약시대의 끝에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으로 오셨으나, 이 역사의 종말, 심판의 끝에서는 온 세상을 다스리고 심판하시는 사자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분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순결한 신부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역사의 주인이신 주님이 세상의 끝에서 다시 오실 때에, 순교자들의 피가 뿌려진 이 땅에서도, 이 땅의 영혼들이 주님께 저항하지 않고, 다 함께 ‘마라나타!’ 를 외치며 주님을 맞이할 수 있도록! 오늘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께서 다스리십니다! 주께서 통치하십니다!


 

[기도제목]

1. 오늘 말씀 붙들고 성경적 역사관, 마라나타 신앙을 회복하기를 기도합시다.

 

우리가 이 시간 함께 기도합시다. 우리가 정말 성경적 관점으로 역사를 바라보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역사에 무관심한 채 나는 중립이라며 천국 시민의 정체성은 버린 채 오로지 바벨론 시민으로만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아직도 자기 중심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하나님은 절대로 나의 편이라는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있습니까? 남북전쟁 중이었던 미국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깁니다. ‘나의 유일한 관심은 내가 하나님의 편에 서 있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서 있으면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 편이 되어 주신다.’ 여러분 우리는 누구를 향해 서 있습니까? 누구를 바라보고 있습니까? 누구를 의지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누구를 기다리고 있습니까?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분은 바로 영원히 다스리시는 통치자, 다시 오실 왕,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여, 이 시간 우리에게 이 믿음의 고백을 다시 회복하게 하옵소서! 역사의 주관자 이신 주님을 바라볼 수 있게 믿음의 눈을 열어 주옵소서! 마라나타! 주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준비하는 자로 세워주시옵소서! 우리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2. 북한과 복음통일의 비전을 붙들고 기도합시다.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사역자들, 특히 이 바벨론 시대에 깨어서 우리 주님의 다시오심을 위해 기도하는 사역자들 중에 북한과 통일을 위해 기도하는 많은 분들이 신기하게도 모두 비슷한 비전을 꿈꿉니다.

 

그것은 바로 한반도 남쪽, 이 땅에서 시작되는 거룩한 복음의 물결이 한국의 북서쪽으로 올라가 북한과 중국의 극악한 공산당 체제를 무너뜨리고, 복음의 파도가 중동을 지나 예루살렘까지 뻗어가는 것입니다.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하나같이 이 거대한 비전을 꿈꾸며 소망하며 기도하며 현재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며 준비합니다.

 

주님이 정말 역사의 주인이시라면! 주님이 정말로 통치하고 계시다면!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정말로 믿는 자들이라면! 여러분 우리가 그 분께 구해야 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북한에 있는 수많은 우리의 형제 자매들을 자유케 해달라고, 심지어 중국에 있는 셀 수도 없이 더 많은 형제자매들을 하나님을 대적하는 체제로부터 구원해달라고! 이 복음이 북한과 중국과 중동을 뚫고 예루살렘까지 가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앞당길 수 있도록! 주여! 마라나타!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라고 외치기를 원합니다! 주여 이 비전을 이루어 주시옵소서! 우리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마무리 기도]

(요한계시록 1장 8절)

8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아멘)

 

주님, 우리 눈에 다 보이지 않지만,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지만, 여전히 역사의 주인이시며 모든 영역의 주권자이신 주님께서 모든 것들을 주관하시며 다스리고 계신 것을 믿습니다. 주님, 우리는 인간으로서 하나님의 생각과 계획을 다 알 수도 다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오늘도 다스리고 계신 주님을 신뢰합니다. 중요한 것은 주여, 우리가 당신의 역사에 동참하기보다 신부로서의 정체성을 잃고 오로지 바벨론의 노예가 되어 당신의 역사로부터 동떨어져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두렵습니다. 주님, 우리의 유일한 관심사는 이 역사의 무대 가운데서 우리가 당신의 편에 서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다른 모든 것은 결국은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 무의미한 것이 될 것입니다. 당신의 뜻만이 온전히 서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가 당신의 역사에 동참하기를 원합니다. 우리 각자가 선 곳에서 다니엘과 에스더가 되기를 원합니다. 사자로 다시 오실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기를 원합니다. 그 마저도 우리의 의지만으로 되어지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새 마음을 허락하시고, 새로운 의지와 새로운 영을 부어 주옵소서. 당신을 영원히 예배하며 영원히 따라가겠습니다. 이 역사의 끝에서 주님을 만나게 될 줄 믿습니다. 이 역사를 끝내시고 완성시키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