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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끝시간 기도회

내 백성을 보내라 (출애굽기 8장 1절)

by 버닝우드 2020. 11. 4.

한동끝시간은 한동대학교에서 매일 밤 9시반마다 한동대 재학생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드려지는 예배입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이 땅에 무너진 영역들을 회복하고자 기도 해온 학생들의 귀한 모임 입니다. 매주 월요일에는 북한과 통일을 위해 중보하는 월요끝시간이 드려지고 있습니다.  <월요끝시간 기도회> 섹션에는 필자가 월요끝시간에서 전한 메시지들을 담았습니다.


[성경본문] (출애굽기 8장 1절)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바로에게 가서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 (아멘)

 

 

[메시지: 내 백성을 보내라]

 

 

몇 년 전, 미국 항공 우주국 나사(NASA)에서 한반도 상공을 지나며 촬영한 위성사진을 공개하였습니다. 언뜻 보면 마치 한 섬의 아경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사진은… 네, 바로 한반도의 야경을 촬영한 사진이었습니다. 한반도의 남쪽은 마치 산 위의 등대처럼, 빛의 도시처럼 빛나고 있는 반면, 한반도의 북쪽은 평양에 조금 보이는 불빛을 제외하고는 칠흑 같은 어둠에 뒤덮여 있습니다. 한 민족이었던 남과 북. 그러나 6.25 전쟁이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안고 최빈국으로 시작한 두 나라. 도대체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게 되었던 것이었을까요? 심지어 역사적인 자료에 따르면, 70년대까지만 해도 북한이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남한보다 더 우세했다고 합니다. 도대체 무엇이 지금과 같은 차이를 만들었을까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오늘 본문에서 모세가 선포하고 있는 ‘신앙의 자유’ 입니다. 오늘은 <내 백성을 보내라> 라는 제목으로 짧게 메시지를 나누고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1) 자유의 본질

 

오늘 본문을 보면, 400년 동안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했던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모세를 바로에게 보내십니다. 40년 광야생활 이후 처음 바로 왕 앞에 서게 된 모세. 모세와 바로왕의 대면은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요구로 시작합니다.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다.”

 

이 자유의 선언 속에는 정말 놀라운 진리가 숨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자유의 근거가 무엇인가? 우리의 자유의 본질이 무엇인가? 우리의 자유의 방향성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입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선포하고 있는 진리는 바로, 우리의 자유는 궁극적으로 유일하신 분, 우리 주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것이라는 진리입니다. 인간의 자유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것입니다! (아멘)

 

그러나 우리의 죄성은 이 개념이 탐탁치 않습니다. 싫어합니다. 우리는 심드렁해서는 이렇게 반문합니다. ‘아니 뭐야. 자유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자유라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자유지. 이게 뭐가 자유야…’

 

그러나 우리는 이 진리가 창조주께서 태초에 선악과를 통해 최초의 인간에게 주신 계시와 동일선상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택권을 주십니다. 우리에게 자유를 주십니다. 우리의 자유의지로, 자발적으로, 그분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자발적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자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자유. 그분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십니다.

 

그분은 생명입니다. 그분이 우리를 지으셨습니다. 그분이 창조주입니다. 그가 우리의 아버지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십니다. 선택하라고 하십니다.

 

(여호수아 24장 15절)

15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선택하라! 생명을 선택하라! 여호와를 선택하라!’ 가나안 땅에 들어가고 나서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호소합니다.

 

그러나 이 자유 자체를 막는 일들이 발생합니다. 하나님을 선택할 자유 그 자체를 원천적으로 빼앗아 가버립니다.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자유 그 자체를 막고 압제하는 애굽의 체제에 대해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렇게 선포하라고 명령하십니다.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다!”

 

그러나 여러분이 아시는 것처럼 바로 왕은 고분고분하게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에게 더 많은 노역을 시키며 압제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바로의 완악함을 사용하셔서 그 유명한 열 가지 재앙으로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능력을 계시하시고 드러내십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자유’의 또 다른 측면이 우리에게 계시됩니다.

 

자신이 손쓸 수 없는 초자연적인 재앙을 겪자 바로 왕은 모세와 협상을 시도합니다. 그는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 중에 장정들, 곧 성인 남자들만 가서 예배를 드리고 오라고 합니다. 가족들을 두고 다녀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이렇게 말합니다. ‘안됩니다! 우리는 남녀노소 모두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나의 아내, 나의 자녀들을 두고 갈 수 없습니다. 우리 가족 모두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자유. 신앙의 자유는 우리의 가족을 지키는 자유와 연결됩니다. 가족들을 지키고 보호하고 가족들을 구원할 수 있는 자유입니다.

 

바로는 이것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그런 바로에게 하나님께서 또 다른 재앙들을 내리십니다. 다급해진 바로가 다시 모세와 협상을 시도합니다. 이제 바로가 이렇게 말합니다. ‘좋다. 아이들까지 가도 좋다. 그러나 너희의 가축, 양과 소, 너희의 재산은 다 두고 가라.’ 이에 대해서 모세는 다시 말합니다. ‘안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가족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재물, 재산도 두고 갈 수 없습니다. 우리의 재물과 재산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으로 하나님을 예배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자유. 신앙의 자유는 재산권, 경제적 자유와도 연결됩니다. 재물은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도록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들을 통해 다시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러한 자유를 주신 것입니다.

 

(2) 자유인의 길과 노예의 길

 

주님은 출애굽기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이 자유에 대한 놀라운 진리를 계시하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애굽에 종 노릇하는 비참한 상태에서 구원하시며 다시는 종 노릇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은 죽음을 앞두고 우리 민족을 향해 갈라디아서 5장 1절로 유언을 남깁니다.

 

(갈라디아서 5장 1절)

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아멘)

 

하나님은 우리가 자유인으로서 우리에게 허락된 자유를 가지고 하나님을 선택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 가정을 이루고, 경제적 풍요를 누리며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으로 다시 하나님을 섬기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축복받은 세대입니다. 우리는 이 자유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만 이 땅에서 이 자유는 대한민국에서 말고는 한 번도 허락되어 진 적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 나라의 건국의 세대는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자유를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선배세대의 피의 희생과 노력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가장 잘 섬길 수 있는 자유를 누리는 체제를 얻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의 자유를 향유하는 축복을 법제도적으로 보장받습니다. 그리고 이 자유는 단지 우리가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의 이웃들에게 영원한 진리와 생명에 이르는 예수 복음을 전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이 자유를 송두리째 부인하는 체제가 있습니다. 우리가 발 딛고 선 이 한반도에는 아까 보았던 사진이 암시하듯이 두 갈래길이 있습니다. 자유인의 길과 노예의 길입니다. 같은 땅인데, 휴전선 이북에는 우리가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이 자유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없습니다. 대한민국에서는 하나님을 믿지 않을 자유도 있지만, 북한에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북한은 부동의 종교박해 1위 국가입니다. 북한에는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자유도 없으며, 가족을 지킬 자유도 없습니다. 그리고 재물과 재산으로 하나님을 섬길 경제적 자유는 더더욱 없습니다. 오로지 국가가 시키는 일을 하며, 정부에 의존하며, 정부가 먹을 것을 주지 않으면 굶어 죽어야만 하는 노예의 길 밖에 없습니다. 고난의 행군 시기 공식적으로 추산된 아사자만 33만명이 넘습니다. 사진과 같이 칠흑 같은 어둠이 북한을 덮고 있습니다.

 

이호 목사님의 저서 <북한을 자유케하라> 라는 책을 보면, 두레마을 공동체로 유명하신 김진홍 목사님의 간증이 담겨 있습니다. 김진홍 목사님은 70년대 우리나라에서 빈민사역을 하시며 나중에는 그들을 데리고 공동체 생활까지 하십니다. 나라가 못살고 가난할 때, 그 와중에 더 가난한 자들이니 얼마나 배고프고 힘들었겠습니까? 그런데 김진홍 목사님께서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발견합니다. 그것은 다 같은 빈민들인데 무엇을 먼저 받느냐에 따라 결과가 천차만별이더라 는 것이었습니다. 사역초기 어떻게든 그들을 돕겠다는 자신만의 열심으로 쌀을 먼저 준 자들은 가만히 보니, 십수년이 지나도 변함없이 자신에게 다시 돌아와서 다시 도움을 구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을 먼저 받은 자들.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은 이후에 다 몰라보게 성공하고, 다 독립하고 일어서서 오히려 자신을 도와주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호 목사님은 이 대목에서 남과 북의 전쟁은 떡과 말씀의 전쟁이라고 하십니다. 마태복음 4장을 보면, 40일을 금식하신 예수님께 사탄이 나타나 유혹합니다. 돌덩이가 떡이 되게 하라고 합니다. 저였으면 바로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렇게 선포하십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말씀으로 말미암아 살 것이니라!’ (아멘). 이 진리를 이미 깨달은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은 떡보다 먼저 말씀을 선택합니다. 우리는 단지 물질적인 존재가 아니라, 초월적인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더 높은 차원의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이 진리를 거부하고, 흰쌀밥에 고깃국을 소원없이 먹게 해주겠다던 김일성의 약속을 믿은 북한은 노예의 길을 따라 갑니다.

 

(3) 내 백성을 보내라

 

출애굽기 말씀을 읽을 때, 주님이 모세에게 선포하라고 명령하신 그 말씀이 강력하게 와 닿습니다.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나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내가 감히 어떻게 그런 말씀을 선포할 수 있을까? 난 못해. 난 못해요 하나님. 다른 사람 찾아보세요.’ 그런데 여러분 그거 아십니까? 이 반응이 정확히 모세의 반응이었습니다. 애굽에서 40년을 왕자로 살았지만, 40년을 광야에서 양만 치고 살았습니다. ‘난 말도 잘 못해요. 난 못해요 주님’

 

그런데요. 주님이 모세에게 어떻게 찾아오십니까? ‘불타는 떨기나무.’ 분명히 불타고 있는데, 소멸되지 않는 떨기나무. 옛날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무 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읊조리고 묵상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히브리어로 이 ‘불탄다’ 라는 표현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 우리 내면에서 일어나는 뜨거운 불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누가복음 24장 32절)

32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풀어질 때 우리는 불타는 떨기나무가 됩니다. 타서 죽을까 두렵기도 합니다. 두려워서 선뜻 나서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외쳐야 합니다. 70년이 넘었습니다. 오랜 압제로 그 신음과 부르짖음이 이미 하나님께 상달되고도 남은 우리 민족, 북한의 형제자매들의 자유를 위해서 우리는 오늘 외쳐야 합니다. 모세가 외쳤듯이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사명이 있습니다.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


[기도제목]

 

1. 성경적 자유의 본질을 다시 되새기고 회복할 수 있도록 기도하겠습니다.

 

우리 이 시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자유를 묵상하며 함께 기도하기 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십니다.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자유. 그 분은 우리를 노예로 부르지 않으십니다. 노예처럼 부려 먹으려고 우리를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를 자유인으로 부르십니다. 우리를 해방시키고 자유케 하시려고 부르십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분은 우리를 자유케 하기 위한 모든 값을 치르십니다. 그분이 직접 목숨을 버리고 희생하기까지 그 값을 치르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그분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주십니다. 놀라운 은혜, 놀라운 사랑! 어떻게 그분을 선택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그분을 섬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게 가능합니다. 자유는 거저 주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때로는 고난이 따릅니다. 때로는 희생을 감수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 광야길을 걷기 싫었던 이스라엘이 그들을 위해 모든 것을 감수하신 하나님께 해서는 안 될 말을 합니다. “차라리 애굽이 좋았다. 차라리 노예일때가 좋았다.” 주님은 지속적으로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노예였던 애굽으로 돌아가지 마라!’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자유케 하시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마라!’

 

우리 이 시간 기도할 때, 내가 주님이 주신 이 자유를 얼마나 감사하고 있는지, 이 자유를 나의 방종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그분을 높이고 그분을 섬기기 위해서 사용하고 있는지 돌아보며 기도합시다. 이제는 종의 정체성이 아니라, 자녀의 정체성으로! 자유인의 정체성으로! 주님, 우리가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당신을 섬기기로 결단합니다. 우리를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2. 북한의 자유, 통일을 위해서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우리가 두번째로 기도할 때 북한의 자유, 종교의 자유, 복음통일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아까도 말했듯이 북한에는 하나님을 선택할 자유가 없습니다. <2020년 북한 종교자유 백서>에 따르면, 2020년 7월 기준 수집된 종교박해사건은 1,411건입니다. 그 중 종교활동에 의한 경우가 53%로 가장 높은데요. 종교물품 소지를 하거나, 종교전파를 하거나, 종교인을 접촉하기만 해도 처벌을 받습니다. 기도를 하거나 찬송가를 부르거나 예배를 드리면 처벌 받습니다. 우리가 이들을 위해서 기도합시다.

 

주님이 모세를 바로에게 보내십니다. 그리고 주님의 마음, 주님의 말씀을 선포하라고 하십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

 

우리가 아무리 떡을 주고 돈을 주고 모든 것을 다 주어도,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자유가 없다면 그들은 여전히 자유인이 아닙니다. 떡보다 중요한 하나님의 말씀! 우리를 자유케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우리가 먼저 순종하며 저들의 자유를 위해 기도하기 원합니다.

 

주여! 저들을 자유케 해주시옵소서. 저들을 구원해 주시옵소서! 저들에게 주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자유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자유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악한 체제는 무너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마무리 기도]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말씀이신 주님, 빛이신 주님, 진리이신 주님, 생명이신 주님, 종 되었던 우리를 자유케 하시려고 당신의 피 값으로, 희생으로, 모든 값을 치르시고 우리를 자녀로 부르신 하나님. 우리에게 자유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를 자유인으로 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들이 다 주님의 은혜이며, 심지어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믿지 않을 자유도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꿈 같은 축복이 우리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 되어, 하나님께 감사하지도 당신을 찬양하지도 않는 우리의 완악함과 무지함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주님, 이 나라에 허락하신 자유. 어느 나라 역사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큰 은혜의 역사를 이 나라에 허락하셨습니다. 동방의 횃불이 되게 해달라는 선교사들의 기도로 탄생한 이 나라가 지금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쩌면 자유의 진정한 의미를 잊은 채 방황했던 이스라엘처럼 우리도 가나안으로 가는 광야 그 어디쯤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주여, 우리가 어디서 시작했는지 기억하게 하시고, 어떻게 이러한 축복과 은혜를 얻게 되었는지 감사하게 하시고, 아직도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있는 우리 민족, 북한의 형제자매들을 자유케 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힘을 더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먼저 기도하고 우리가 먼저 시작하겠습니다. 우리가 먼저 외치겠습니다. 40년동안 양만 돌보다 보니 말도 제대로 못하게 된 모세도 외쳤습니다.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다” 주님 저들에게도 이 은혜의 역사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함께 자유인으로서 주님을 섬길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도록 역사해 주옵소서.

 

한주를 시작합니다. 날마다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의 무게와 책임을 감당하며 다시 원수에게 종노릇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모든 영광을 주님께만 올려 드립니다. 우리의 유일한 소망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