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끝시간은 한동대학교에서 매일 밤 9시반마다 한동대 재학생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드려지는 예배입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이 땅에 무너진 영역들을 회복하고자 기도 해온 학생들의 귀한 모임 입니다. 매주 월요일에는 북한과 통일을 위해 중보하는 월요끝시간이 드려지고 있습니다. <월요끝시간 기도회> 섹션에는 필자가 월요끝시간에서 전한 메시지들을 담았습니다.
(시편 34:18-20)
18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19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20 그의 모든 뼈를 보호하심이여 그 중에서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도다 (아멘)
[메시지 제목: 깨어짐의 학교]
진 에드워드 목사님의 <세 왕 이야기> 라는 책이 있습니다. 권위주의적인 조직 안에서, 특별히 공동체와 교회 안에서 마음의 상처를 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와도 같은 이 책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습니다.
“하나님은 학교를 하나 가지고 계십니다. 그것은 작은 학교이지요. 적은 수의 사람이 입학해서 더 적은 수가 졸업을 합니다. 사실 아주 적은 수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이 학교를 가지고 계신 이유는 그분께 깨어진 사람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깨어진 사람들 대신 몇몇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권위를 가진 자라고 주장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 그런가 하면 하나님께로부터 권위를 받기는 했으나 미쳐 있거나, 깨어지지 않은 사람들. 그리고 유감스럽게 하나님 보시기에 이 모든 것들을 요란하게 섞은 잡동사니의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분은 이런 모든 사람들은 넘치도록 가지셨으나, 깨어진 사람은 거의 없으신 것입니다.”
시험기간인 8주차입니다. 오늘은 <깨어짐의 학교> 라는 제목으로 메시지를 짧게 나누고,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1) 목동, 기름부음을 받다
한 소년이 있습니다. 그는 목동입니다. 그는 산에서 들에서 며칠씩이고 홀로 양들을 돌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소년은 아주 외로워집니다. 그의 내면에 항상 맴돌고 있는 이 고독감이 점점 커져갑니다. 이 고독 속에서 그는 종종 울기도 하고, 오랫동안 하프를 연주하며 자주 노래도 부릅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이 더 이상 위로가 되지 않을 때는 깨끗한 돌맹이들을 찾아 돌무더기를 쌓아 놓고는 돌맹이가 다 없어질 때까지 물매를 연습하기 합니다.
이 고독 속에서도 이 소년은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양들이 다 잠든 깊은 밤이면 홀로 자신만의 연주를 시작합니다. 조상들의 믿음을 노래하는 옛 찬송들을 부르기도 합니다. 노래를 하고, 흐느끼고, 또 흐느끼면서 온 마음을 다해 찬양을 합니다.
그는 또한 자신의 목숨을 다해 양들을 지킵니다. 하루는 살아 있는 곰을 만납니다. 그는 자신의 주머니에서 돌맹이를 꺼내 그동안 연습한 물매 실력으로 곰을 죽입니다. 그 소년은 위험에 처했던 양을 끌어 안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너의 목자이고, 하나님은 나의 목자이시다.’
그런 그 소년에게 일생일대의 사건이 발생합니다. 웬 늙은 선지자가 자신을 찾는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그는 부리나케 아버지의 장막으로 뛰어 갑니다. 햇빛에 그을린 뺨 위로 구슬땀을 흘리는, 상기된 얼굴과 붉은 곱슬머리를 가진 이 소년에게 그 노인은 무릎을 꿇으라고 합니다. 무릎을 꿇은 그 소년의 머리 위로 기름이 부어집니다. 그것은 왕의 기름부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소년은 그때는 알지 못했습니다. 자신이 그 사건 이후로 10여년간의 세월동안 지옥 같은 고통과 괴로움의 날들을 보낼 것이란 것을 말입니다.
(2) 창을 던지는 미친 왕
골리앗을 쓰러뜨린 이후 다윗은 이스라엘 초대 왕인 사울에게 등용되어 왕궁으로 갑니다. 이후 사울은 다윗을 자신의 왕국을 위협하는 존재로 인식하게 됩니다.
사울은 모든 미친 왕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하였습니다. 사울은 다윗에게 창을 던집니다. 그는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왕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신하에게 창을 던지는 사람이 과연 진정한 왕일 수 있는 것일까요? 창을 던지는 공동체 리더, 창을 던지는 목사님, 창을 던지는 교수님, 창을 던지는 선배, 창을 던지는 상사. 혹시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이들은 진정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들일까요? 에드워드 목사님은 앞서 소개한 책에서 이 답변을 반복합니다. “하나님만이 아시지요. 그러나 그분은 말씀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앞서 읽은 글에 이어서, 에드워드 목사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질문하십니다.
“순종과 깨어짐을 배우는 이 신성한 학교에는 왜 그렇게 학생들이 적을까요? 그것은 이 학교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겪어야 할 많은 ‘고통’ 때문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추측한 대로, 종종 고통을 안겨주는 깨어지지 않은 지도자들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선택하셨지요) 때문이기도 합니다. 다윗은 한때 이 학교의 학생이었고, 사울은 다윗을 깨뜨리기 위해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방법이었습니다.”
어쨌거나 창은 던져졌고 다윗에게는 몇 가지의 선택이 존재했을 것입니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옵션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당연히 벽에 박힌 그 창을 빼내어 창을 던진 왕에게 되돌려 던지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틀림없이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런데요. 여기서 다윗은 전혀 다른 선택을 합니다. 그는 보복하지 않기로 결정합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합니다. 창을 보지 못하는 척을 합니다. 그리고 아주 재빨리 창을 피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체합니다.
그러나 이쯤 되면 우리 안에 이런 소리들이 터져 나옵니다. ‘내가 왜 저 창을 피하고 있어야 되나. 이것은 불의하다. 부당하다. 그는 제대로 된 왕이 아니다. 하나님이 저런 사람을 세우셨을 리가 없다. 나는 이것을 견딜 수 없다. 되갚아 줄 것이다.’
그런데요. 에드워드 목사님은 그런 우리의 내면의 저항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조심하십시오. 왜냐하면 하나님은 또 하나의 사울 왕을 주시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당신 안의 사울 왕을 보고 계신 것입니다. 사울은 당신의 핏줄 속에 있고 당신의 골수에 있습니다. 그는 바로 당신 심장의 살과 근육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는 당신의 영혼 속에 있습니다. 당신 몸의 원자들 중심에 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울 왕은 당신과 함께 있는 자입니다. 당신이 바로 사울 왕인 것입니다!”
이어서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다윗의 심장 안에 있는 사울을 제거하지 않으셨다면, 양치기 다윗은 사울 왕 2세로 성장했을 것입니다. 그 수술은 실상 여러 해가 걸린 것이었고 환자를 거의 죽게 할만큼 무자비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러면 이 속사람 사울을 제거하기 위해 하나님이 사용하신 메스와 집게는 무엇이었나요? 하나님은 바로 겉사람 사울을 쓰신 것입니다. 사울 왕은 다윗을 죽이려고 그렇게 애썼지만, 그가 이룬 유일한 성공이라고는 다윗의 영혼의 동굴 속을 배회하던 속사람 사울을 죽이는 하나님의 시종이 된 것뿐이었습니다.”
(3) 깨어진 상한 심령의 소유자
이 글은 절대로 사울과 같이 창을 던지는 미친 왕을 옹호하고 합리화하기 위해 적힌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동시에 반대로, ‘그래. 너가 바로 사울이야’ 라며 여러분에게 창을 던진 그 사람을 비난하기 위해 쓰인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것은 바로 다윗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당한 고난과 역경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하지도 사람에게 보복하지도 않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입니다. 그는 그 잔인한 상황들을 포용합니다. 응수하지도, 대항하지도 않았습니다. 자신의 경건함을 보이기 위해 박수갈채를 노리는 연기도 하지 않습니다. 잠잠히, 혼자서, 그는 그 가혹한 시련을 겪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그는 속사람 전부가 절단됩니다. 그의 성품이 변화됩니다.
사울을 통해 하나님은 다윗 안에 있는 사울을 제거하십니다. 그것이 그가 겪은 첫 번째 시험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인생의 후반기에 두 번째 시험을 겪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아들 압살롬이 자신을 반역하고 죽이려 한 사건이었습니다. 사울이 윗사람이 자신을 죽이려 한 시험이었다면, 압살롬은 아랫사람이 들고 일어나 자신을 죽이려 한 시험이었습니다. 압살롬은 사울의 반열을 따르는 젊은 버전의 사울이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이 때도 사울이 되기를 거부합니다. 자신이 사울이 될 바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잃기로 다짐합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지금의 상황 가운데 말씀하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나타나시도록 충분히 자리를 내어 드리겠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외에는 이런 별난 사건을 해결할 다른 방법을 알 수가 없습니다.”
“왕권은 내 것이 아닙니다. 내가 가질 것도, 보호할 것도, 지킬 것도 아니란 말이지요. 나는 성을 떠나겠습니다. 왕권은 이제 주님의 것입니다. 왕국도 마찬가지지요. 나는 하나님을 방해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장애물도, 또 내가 하는 어떤 일도 그분의 뜻을 이루시는 데에 조금도 틈을 내지 않을 것입니다. 그분이 그의 뜻을 이루시는 것을 막을 만한 장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만약 내가 왕이 될 사람이 아니라면, 하나님은 압살롬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시는 데 아무 문제가 없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하나님 되시옵소서!”
8주차 시험기간입니다. 어쩌면 전체 인생으로 보았을 때는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은 이 시험도 지금은 크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한동을 소개하는 대표적인 책 <갈대상자>. 그 책에서도 김영애 권사님께서 이 책을 소개하십니다. 우리가 공부하는 장소로 많이 사용하는 오석관. 그 이름의 뜻은 다섯 개의 돌이란 뜻으로, 한동인들이 골리앗과 싸울 준비를 하는 다윗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지었다고 합니다. 한동에는 곳곳에 이렇게 다윗에 대한 계시가 풀어져 있습니다. 깨어짐의 학교입니다.
하나님은 깨어짐의 학교를 운영하고 계십니다. 우리 각자가 어떤 어려움, 어떤 고난, 어떤 시련을 겪고 있는지 저는 다 알지 못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 고난과 역경을 통해 하나님은 여러분의 속사람을 빚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속사람이 거듭난 사람. 하나님은 깨어지고 상한 심령의 소유자, 다윗을 원하십니다.
우리가 모두 그런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이 시간 우리 함께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기도제목]
1. 한동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하나님은 깨어짐의 학교를 운영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대학 한동도 어쩌면 이 원리로 하나님께서 운영하시는 학교입니다. 하나님의 대학이라는 의미. 우리는 그것을 마치 이곳이 모든 것이 완벽해야 하는 장소라는 의미로 오해하면서 사용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대학이 어떻게 이럴 수 있어?’ ‘하나님의 대학이 왜 이래?’ ‘이러고도 하나님의 대학이라는 말을 입에 담을 수 있어?’
그런데요.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하나님의 대학’은 완벽해서 하나님의 대학인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깨어짐의 학교입니다.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고난과 역경이 있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사울이 창을 던지는 곳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요. 그 고통을 통해서 지금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존재하는 사울을 제거하시고, 다윗을 빚어가고 계신 다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의 보좌를 하나님께 내어드릴 수 있는 사람! 우리가 그런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한동인들이 깨어짐의 학교에 입학해서 졸업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대학 한동이 깨어짐의 학교로서 학생들을 다윗으로 세우는 역할을 잘 할 수 있도록. 한동에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면서 함께 기도합시다.
2. 북한과 통일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우리가 다시 기도할 때, 같은 맥락에서 북한과 통일을 위해서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지금도 고통을 겪는 수많은 북한주민들과 목숨을 걸고 대한민국으로 온 탈북민들의 고난과 상처와 역경에 대해서 뭐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을 위해서 중보하기를 원합니다.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그들의 고통이 단지 고통, 단지 저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고통과 상처가 도리어 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길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 민족이 겪고 있는 분단의 고통, 전쟁, 갈등, 아픔, 상처, 이 모든 것들이 결국에는 이 땅에 다윗들을 만들어 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을 더 하나님 되시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온전히 당신의 보좌에 앉혀 드리기 위해서 우리의 자아를 죽일 수 있는 사건으로 작용하기를 원합니다. 주여, 한국교회가 깨어 일어나 우리나라가 겪는 상처와 고통과 아픔을 품게 하옵소서. 그리고 이 고통을 통해 하나님을 부르짖게 하옵소서. 하나님을 더 의지하게 하옵소서. 온전히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나라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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