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끝시간은 한동대학교에서 매일 밤 9시반마다 한동대 재학생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드려지는 예배입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이 땅에 무너진 영역들을 회복하고자 기도 해온 학생들의 귀한 모임 입니다. 매주 월요일에는 북한과 통일을 위해 중보하는 월요끝시간이 드려지고 있습니다. <월요끝시간 기도회> 섹션에는 필자가 월요끝시간에서 전한 메시지들을 담았습니다.
(잠언 31:8)
8 너는 말 못하는 자와 모든 고독한 자의 송사를 위하여 입을 열지니라
[메시지 제목: 이 땅에 현존하는 지옥]
수년 전에 청년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신조어가 있었습니다. ‘헬조선’이라는 단어입니다. ‘안녕들하십니까,’ ‘n포 세대,’ ‘흙수저,’ ‘노오력’과 같은 단어들처럼, ‘헬조선’ 이라는 단어는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는 환경,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지옥 같은 환경을 한국사회에 빗대어 극단적으로 풍자한 단어였습니다. 많은 이들이 분노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 사회는 썩었고 부조리하다며 정의를 부르짖었습니다. 기성 정치인들은 청년들에게 공감을 표하며 분노를 더 부추기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 헬조선을 외치던 사람들이 구태여 절대로 말하고 싶지 않아 했던 사실이 있습니다. 바로 이 땅에 진짜로 지옥이 현존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현존하는 지옥, 헬조선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바로 우리 2천만 동포들이 갇혀 있는 북한이 헬조선이고, 그 중에서도 인권이란 것을 절대로 찾아볼 수 없는 교화소와 정치범수용소가 바로 진짜 지옥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오늘은 그들이 그렇게도 침묵하고자 했던 <이 땅에 현존하는 지옥>에 대해서 함께 나누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1) 교화소
교화소는 각종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수감하는 일종의 교도소입니다. 교화소라는 말은 본래 “재교육을 통해 훌륭한 사람을 만드는 장소”를 뜻합니다. 북한에서는 투옥과 함께 강제노동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노동교화소”로 불리기도 합니다.
어느 사회나 살인, 강도, 절도, 폭행 등의 죄를 저지른 사람은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죄인이라도 인권 전체를 유린 당하거나, 인간 이하의 삶을 강요당하지는 않습니다. 죄수의 인권도 존중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북한의 교화소에서는 죄에 대한 처벌을 받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인간으로서의 권리 자체를 박탈당합니다. 다른 사회에서는 죄라고 할 수도 없는 죄목으로 비참한 삶을, 혹은 죽음을 강요 당합니다.
교화소에서는 세수할 권리도 없습니다. 대충 못을 박아 만든 나무 욕조에 천을 적셔서 얼굴을 닦는 것이 전부 입니다. 제대로 씻지를 못하는데다가 갈아입을 옷도 없으니, 죄수들이 가는 곳마다 악취가 진동합니다. 대다수의 교화소 수감자들이 일 년 내내 입은 옷 그대로 잠을 자고 입은 옷 그대로 일을 합니다. 그나마 지급되는 생필품들도 보안원들이 절반을 빼돌립니다. 옷은 누더기가 되고, 신발은 바닥까지 닳아서 발가락과 발뒤꿈치가 훤히 보이는 것을 신습니다.
더 비참한 것은 먹는 것 입니다. 식사로 강냉이밥, 그것도 짐승사료로 사용되는 싯누런 원두콩이 3분의 1을 차지하는 140g정도의 밥과 절인 양배추 떡잎 한두 개가 떠 있는 소금국이 제공됩니다. 빈약한 식사로 하루 10시간 이상 중노동을 하기 때문에 영양실조에 걸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배고픈 수감자들은 닥치는 대로 먹습니다. 풀, 나무 껍질, 쥐, 도마뱀 등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음식이 됩니다. 심지어 소똥에 박혀 있는 강냉이를 파서 먹기도 합니다. 소의 배설물을 먹으니 인간 이하 정도가 아니라 동물 이하의 삶이 됩니다.
극도의 굶주림에 시달리다 보면 사람은 인간성을 잃습니다. 24시간 내내 먹는 것만 상상합니다. 이쯤되면 신체적인 문제일 뿐 아니라 정신적인 문제가 됩니다. 먹을 것만 생각하는 인간은 먹이만 쫓아다니는 동물과 비슷해집니다. 결국 교화소는 인간을 교화시키는 곳이 아니라 인간성을 파괴하는 곳이 됩니다.
교화소에서는 죽음이 넘쳐 납니다. 다양한 이유로 잡혀 들어온 죄수들이 다양한 이유로 죽습니다. 영양실조로 죽고 구타당해서 죽고 일하다가 사고로 죽고 병에 걸려서 죽습니다. 교화소의 불결한 위생상태 때문에 전염병이 돌아서 떼죽음을 당합니다. 교화소의 시체들은 모두 수레에 실려 불망산으로 옮겨 집니다. 그곳의 화로에서 불태워집니다.
아무리 죄수여도 인권이 존중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보안원들은 가족들에게 알리지도 않고 시체들을 일방적으로 불태웁니다. 살아서도 자유가 없고 죽어서도 자유가 없는 곳이 북한의 교화소 입니다. 더 슬픈 것은 교화소에서는 가족이 죽어도 슬퍼할 자유마저 없다는 것입니다. ‘학습을 잘하자,’ ‘죄를 씻기 위해서 일하자’ 라는 말 외에는 다른 말을 할 수 없으며, 감시체제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정치적 발언, 사회에 대한 비난, 불만을 털어 놓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2) 정치범 수용소
북한은 “수용소 체제”입니다. 수용소를 만들고 조금이라도 위협이 될 가능성만 있어도 수용소에 가두어 버립니다. 이 공포를 통해 주민들을 마비시킵니다. 정치범 수용소는 혁명화구역과 완전통제구역으로 나뉩니다. 혁명화구역은 비교적 죄질이 가벼운 이들에게 해당됩니다. 몇 년간의 강제노동을 마친 다음에 풀려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완전통제구역은 죄질이 무거운 이들이 가는 곳으로, 한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수용소에 갈까요? 첫째로, 체제 반대자, 혹은 반대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 갑니다. 처음 정치범 수용소가 세워질 때는 공산정권의 토지몰수에 저항한 지주, 기독교인, 남한 출신자와 가족, 자본가, 김일성에 저항한 반당 종파분자 등이 감금되었습니다. 그 후 김일성 – 김정일의 철권통치가 강화되면서 수령독재에 방해되거나 방해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 수용소로 추방되었습니다. 둘째, 반대자, 혹은 반대 가능성이 있는 자의 “가족들”입니다. 북한에는 집단책임제, 연좌제가 살아 있습니다. 부모, 자녀는 물론, 때로는 손자까지 모두 수감됩니다. 셋째, 김씨 일가의 사생활을 알고 있는 경우입니다. 넷째, 김일성 일가에 대한 사소한 불평, 비방을 한 경우입니다. 다섯째는 소위 ‘정성사업’ 위반자들입니다. 북한에서 헌법보다 중요한 법이자, 김일성 종교의 계명인 것은 바로 유일사상 10대 원칙입니다.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 동지의 초상화, 석고상, 동상, 초상 휘장, 수령님 초상화를 모신 출판물, 수령님을 형상화한 미술작품, 수령님의 현지교시판, 당의 기본 구호들을 정중히 모시고 다루며 철저히 보위하여야 하는데 이것을 위반하면 수감됩니다. 여섯째는 정성사업 위반자에 대한 목격자입니다. 정성사업이 위반된 것을 목격하고도 고발하거나 처벌하지 않으면 목격자가 처벌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일곱째로 당 간부들의 부당한 요구를 거절한 경우입니다. 당간부의 성상납을 거부한 23살의 한 처녀 당비서는 23년동안 정치범 수용소에서 온갖 고통을 다 겪고 46세가 되어 풀려 났습니다. 그럼에도 아무런 보상도 없었습니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이유들로 북한 주민들은 정치범 수용소로 갑니다. 어느날 갑자기 보위부 요원들이 들이닥쳐서 짐을 싸라고 하면서 가족 전체를 끌고 갑니다. 수감자들은 누가 고발했는지 왜 잡혀가는지도 모릅니다. 재판도 없고 변호사도 없고 변호할 기회조차 없습니다. 그대로 연행되어 자백을 강요 받으면서 온갖 고문을 당하다가 강제노동 수용소로 보내집니다.
수용소도 교화소처럼 극도로 적은 식량과 극도로 많은 노동을 시킵니다. 수용소 사람들이 제일 많이 걸리는 병은 펠라그라 라는 영양부족에서 오는 피부병입니다. 피부가 거칠어지고 껍질이 벗겨집니다. 노인들은 손톱이 뒤로 젖혀집니다. 너무 못 먹다 보니 먹을 수 있는 건 닥치는 대로 입에다 넣습니다. 개구리나 뱀, 나무열매 뿐 아니라 쥐까지도 남아나지 않습니다. 영양실조가 오래되면 정신이 망가집니다. 밤낮 먹을 생각만 하다가 정신적인 기능이 마비 됩니다. 아무런 음식도 입에 대지 못하고, 결국에는 죽고 맙니다.
먹을 것도 입을 것도 부족한 수용소에서 사람이 죽으면 수감자들은 시체에 달려듭니다. 죽은 사람이 입던 옷을 서로 벗겨서 시체는 알몸으로 묻힙니다. 겨울에는 난방이 제대로 안되니, 동상에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오랜 동상 때문에 발가락이 썩어서 잘려 나가기도 합니다.
수용소에서 탈출하다가 잡히면 공개처형을 당합니다. 처형 방법은 대개 총살형이나 교수형인데, 끔찍한 방법을 곁들이기도 합니다.
탈출자를 차에 매달아서 죽을 때까지 땅바닥에 끌고 다니기도 하고, 총으로 쏘아 조각이 난 시체에 돌을 던지도록 수용소 사람들에게 명령하기도 합니다. 수감자들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공포감을 주려고, 갈가리 찢긴 탈출자의 시신을 직접 손으로 만지게 하기도 합니다.
완전통제구역에 수감된 자들에 대해서 경비대원들은 수감자들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 교육을 받습니다. 수감자를 인간으로 대하면 경비대원들의 부모들도 수용소에 갇히게 된다는 교육을 합니다.
정치범의 딸들이 경비대에서 기르던 개의 공격을 받아 죽어도 오히려 개의 관리인은 칭찬을 듣습니다. 개는 이렇게 사납게 키워야 된다고. 이주자들이 경비대 개만 보아도 넋을 잃고 감히 반항하거나 도망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만삭이 되어 오거나 수용소에서 임신을 한 여자들은 강제로 낙태를 당하기도 합니다. 말하지 못하는 자의 대표적인 예시인 태아. 그런데 심지어 정치범 수용소에 갇힌 여성이 엄마인 태아는 세상의 빛도 보지 못한 채 그렇게 목숨을 잃습니다.
완전통제구역에는 가족도 없습니다. 가족조차 말살해버립니다. 짐승같이 되어 가족까지도 죽일 수 있게 만듭니다. 완전통제구역에서 자란 신동혁이라는 사람의 어머니와 형은 탈출을 모의하다가 발각되었습니다. 고문 당해서 처참한 몰골이 된 채로, 가족들의 눈 앞에서 처형 당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을 고발한 사람이 누구인 줄 아십니까? 바로 신동혁씨 본인 이었습니다. 우연히 탈출모의를 엿듣게 된 그는 배운 그대로 행동했습니다. 탈출자를 신고하면 상을 받는다는 가르침대로 보위부원에게 일러바쳤습니다. 글자 그대로 인간성이 마비되고 파괴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가족을 고발한 대가로 돌아온 것은 상이 아니라 고문이었습니다. 보위부원은 탈출 계획을 적발한 공로를 가로채기 위해서 신동혁과 아버지를 무자비하게 고문하였습니다. 소년이었던 신동혁은 거꾸로 매달린 채로 숯불통에 등을 지지는 숯불구이 고문을 당해야 했습니다. 관리소에서는 부모, 형제, 가족, 사랑과 같은 개념도 경험도 없으니 죄책감도 없습니다. 신동혁씨는 기적적으로 북한을 탈출해서 한국에 온 다음에야 자신의 고발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미 세상을 떠난 어머니와 형에게 용서를 구했다고 합니다.
정치범 수용소는 인간에게 양심도 마비되게 하고, 사랑도 없어지게 하며, 의식도 멈추게 할 수 있는 곳, 인간성 자체를 파괴해버리는 생지옥인 것입니다.
교화소, 혁명화구역, 완전통제구역, 구류장, 집결소, 노동단련대 등 다양한 인권유린의 기록 속에서 우리는 그 지옥 같은 끔찍한 현장들을 마주해야 합니다. 만약 나의 부모님과 형제가 끔찍한 고문에 시달리다가 죽는다면! 만약 누군가가 나의 의견을 묻지도 않고 사랑하는 가족들의 시신을 불태워버린다면!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눈물조차 흘릴 수 없고 말 한마디 할 수 없다면! 만약 어린 소녀들을 개들이 뜯어먹는 장면이 내 눈앞에 펼쳐진다면! 배가 부른 임산부에게 주사를 놓는 장면이 내 앞에서 벌어진다면, 비닐에 넣어지고 양동이에 담겨져 꿈틀대는 태아들이 쓰레기처럼 버려진다면! 상상은 악몽이 됩니다. 이 악몽을 직면하는 것이 바로 북한을 이해하는 과정입니다.
이 악몽을 직면하는 일은 고통스럽습니다. 보기도 상상하기도 싫습니다. 그러나 이 악몽을 직면하는 일 속에서 우리 마음에 느껴지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 불길이 타오릅니다. 그것은 정의감이요. 분노요. 투쟁심의 불꽃입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있어서는 안되는 일을 있지 않게 하려면, 가만히 있으면 안된다. 맞서 싸워야 한다. 말 못하게 하는 자들과의 싸움은 말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르무엘 왕에게 전해졌던 잠언. 그 잠언 말씀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너는 말 못하는 자와 모든 고독한 자의 송사를 위하여 입을 열지니라” (31장 8절)
가족이 죽어나가고 불태워지는 것을 보면서도 말 한마디 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하여, 어머니를 고발하고도 잘못인지도 모르는 자식들을 위하여, 토끼보다 더 다양한 풀을 먹고 소똥에 박힌 옥수수알을 꺼내먹어야 하는 동물화된 동포들의 송사를 위하여, 비명 소리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죽어나간 태아들을 위하여, 아기가 살해당한 다음날조차 망가진 몸과 넋이 나간 정신으로 강제노동에 투입되어야 하는 여인들을 위하여, 입을 열고 목청을 돋우어 외쳐야 합니다.
북한의 진실을 밝히고 인권을 말하는 것은 대단한 업적이 아닙니다.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도리요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기도제목]
1. 북한의 인권을 위해서 기도합시다.
우리가 이 시간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누구를 위해서요? 북한을 위해서요. 우리 형제 자매들을 위해서요. 말 못하는 저들을 위해서요. 나랑 상관 없다는 생각이 드십니까? 아닙니다. 저기서 비참하게 죽은 저 사람이 우리 아버지일 수 있었습니다. 우리 형일 수도 있었습니다. 우리 엄마, 우리 누나, 우리 여동생일 수 있었습니다. 한국사회는 너무 살기 힘들다며 불평 불만하는 내가 저기서 태어나서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무슨 은혜입니까? 무슨 축복입니까? 우리는 무슨 자격이 있어 축복을 받고, 저들이 자격이 없어 저주를 받은 것입니까? 아닙니다. 만약 우리에게 설명할 수 없는 축복이, 설명할 수 없는 은혜가 주어졌다면 그것은 우연히 주어진 것이 아니라, 다 이유가 있고, 사명이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바로 북한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 말 못하는 저들을 위해서 우리가 목소리를 내는 것! 찬양 한 번 마음 놓고 부르고 싶어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저들을! 북한을 자유케 하는 것! 그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이유입니다.
우리가 이 시간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의 신세를 한탄하며 불평불만 했던 것을 회개합시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를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로 영원히 죽음에 가두어 버리는 북한의 극악한 수용소 체제가 무너지도록! 북한의 인권문제가 개선될 수 있도록 우리가 함께 마음 모아 기도합시다!
2. 대한민국을 위해서 기도합시다.
우리가 이 시간 한 번 더 기도할 때, 대한민국을 위해서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대한민국의 지도자들을 위해서,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들이 깨어나기를 기도합시다. 뉴스를 통해서, 미디어를 통해서, 최근에 북한군에 의해 사살된 우리나라 공무원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셨을 것입니다. 우리가 북한 인권 기록에서 볼 수 있는 일을 우리나라의 한 가족이 겪은 것입니다. 총살하고 불태운 시신을 다시 찾을 수도 없는 가족들의 마음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아마 여러분들 중에는 우리나라의 지도자가 김정은 위원장을 향하여 생명존중의지에 경의를 표한다고 발언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말 못하는 자들, 고독한 자들의 증언으로 우리는 북한이 정반대의 상황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생명이 철저히 경시되는 사회. 김정은에게 조금이라도 반대하면 인간 이하 아니 짐승 이하의 권리도 보호해주지 않는 수용소에서 비참하게 죽어야 하는 사회. 그곳에서 우리 동포들은 지옥을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지옥 같은 환경에서도 믿음을 지키는 진짜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아무리 남북관계가 중요해도, 우리가, 대한민국이 북한의 인권문제를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나라보다 미국, 일본에 의해서 먼저 발의된 북한인권법, 그리고 그 인권법에 의해 이미 진작에 설립되었어야 할 북한인권재단은 아직도 출범되지 못한 채 가라앉아 버렸습니다. 통일부는 20년간 민간차원에서 북한인권조사를 진행해온 북한인권정보센터를 차단하고 축소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주님,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주님, 대한민국이, 우리마저 저들의 고통에 침묵한다면 나중에 우리가 통일이 되었을 때, 아니 천국에서 저들을 만날 때 우리가 무엇이라고 변명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대한민국의 지도자들이 깨어나도록, 그리고 그것을 지도자들에게만 맡겨 놓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한국교회가 목소리를 내고 인권문제에 대한 방안들을 강구할 수 있도록 주님 도와 달라고 함께 기도합시다!
[마무리 기도]
주님, 우리가 받은 은혜, 우리가 받은 축복. 모두 주님께서 주셨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원망하고 불평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을 비아냥거리고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낭비한 것을 회개합니다. 누군가의 작은 고통, 심지어 지나가는 길고양이의 고통에도 마음 아파하는 우리 였음에도, 북한 땅에서 이 땅에 현존하는 진짜 헬조선에서 지옥을 경험하는 우리의 형제 자매들의 고통을 당연한 것처럼 생각한 우리를 용서해주십시오. 그러나, 주님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그들의 자유를 위해 기도하는 것! 말할 수 없는 그들을 위해, 그들을 대변하고 그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것! 그 작은 순종부터 우리가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성령 하나님 도와주십시오. 우리가 저들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우리가 저들을 마음에 품겠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주님께서 일하여 주십시오. 우리가 최소한 함께 천국에서 손 맞잡고 북한에서 순교한 자들을 만날 때 아무런 할 말이 없지 않도록. 주님 우리를 인도해 주십시오. 북한을 향한 주님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모든 일들을 행하시고 결국에 홀로 영광 받으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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