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끝시간은 한동대학교에서 매일 밤 9시반마다 한동대 재학생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드려지는 예배입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이 땅에 무너진 영역들을 회복하고자 기도 해온 학생들의 귀한 모임 입니다. 매주 월요일에는 북한과 통일을 위해 중보하는 월요끝시간이 드려지고 있습니다. <월요끝시간 기도회> 섹션에는 필자가 월요끝시간에서 전한 메시지들을 담았습니다.
[메시지 제목: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자유]
(1) 자유의 시작: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자유!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의무’라는 관점에서 보게 될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이것 저것 해야 하는 것들이 많다 보니, 하나님께 우리가 해야 하는 것들을 무거운 짐으로 여길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마치 노예가 되어 속박당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는 그 시작이 ‘자유’입니다.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공동체를 향해 하나님께서 지속적으로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라(신명기 5장 6절)” 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이집트에 노예가 된 이스라엘 백성을 자유케 하고자 하십니다. 하나님의 메시지는 하나님의 사람 모세를 통해 이집트왕 바로에게 이렇게 선포됩니다.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다!”
네, 그렇습니다. 이것이 자유에 대한 ‘성경적 인식’ 입니다. 바로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자유, 신앙의 자유가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자유의 기초가 되었다는 인식입니다. 아이러니처럼 들릴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자유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진정한 자유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에게 이 자유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만, 우리보다 앞서 이 땅에 살았던 세대들에게 이것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아직도 이것이 당연하지 않은 곳이 많이 있습니다.
(2) 우리가 가진 모든 것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라: 가정과 자녀에 대한 권리, 경제적 권리
“8 모세와 아론을 바로에게로 다시 데려오니 바로가 그들에게 이르되 가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갈 자는 누구 누구냐 9 모세가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인즉 우리가 남녀 노소와 양과 소를 데리고 가겠나이다 10 바로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와 너희의 어린 아이들을 보내면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함과 같으니라 보라 그것이 너희에게는 나쁜 것이니라 11 그렇게 하지 말고 너희 장정만 가서 여호와를 섬기라 이것이 너희가 구하는 바니라 이에 그들이 바로 앞에서 쫓겨나니라” (출애굽기 10장 8-11절)
오늘 본문에는 나오지 않지만, 모세를 통해 하나님의 재앙을 경험한 바로는 모세와 타협을 시도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되 아주 멀리 가지는 말고, ‘남자 성인’들만 다녀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제한적으로 자유를 주는 것 같았지만, 그들의 가정, 자녀, 그리고 재산은 두고 가라고 했습니다.
“24 바로가 모세를 불러서 이르되 너희는 가서 여호와를 섬기되 너희의 양과 소는 머물러 두고 너희 어린 것들은 너희와 함께 갈지니라 25 모세가 이르되 왕이라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드릴 제사와 번제물을 우리에게 주어야 하겠고 26 우리의 가축도 우리와 함께 가고 한 마리도 남길 수 없으니 이는 우리가 그 중에서 가져다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섬길 것임이며 또 우리가 거기에 이르기까지는 어떤 것으로 여호와를 섬길는지 알지 못함이니이다” (출애굽기 10장 24-26절)
하지만 이에 대해 모세는 단하나도 타협하지 않습니다. 가정도, 자녀들도, 가축과 재산들도 다 함께 데리고 가야한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가진 모든 것들, 우리의 가족도, 자녀들도 하나님을 예배해야 하며, 심지어 우리가 가진 재물과 재산들을 통해서도 하나님을 예배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모든 것으로 그분을 예배할 자유가 있는 것입니다.
(3) 한반도의 두 갈래길: 자유인의 길 vs. 노예의 길
이미 언급한 것처럼, 우리가 현재 대한민국 땅에서 가지고 있는 이 자유는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고 수많은 우리 선조, 선배세대들의 희생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자유를 가장 잘 지킬 수 있는 정치체제를 우리가 얻게 된 것이었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우리의 신앙의 자유를 향유하는 축복을 법제도적으로 보장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자유는 단지 우리가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의 이웃들에게 영원한 진리와 생명에 이르는 예수 복음을 전하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발 딛고 선 이 땅 한반도에는 두 갈래길이 존재합니다. 자유인의 길과 노예의 길입니다. 같은 한반도인데, 휴전선 이북에는 우리가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이 자유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없습니다. 대한민국에 살면 하나님을 선택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도 있지만, 북한에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북한에는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자유도 없고, 자신이 가진 재물과 재산으로 하나님을 섬길 경제적 자유는 더더욱 없습니다. 오로지 국가가 시키는 일을 하며, 정부에 의존하며 사는 노예의 길 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사명이 있다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이 자유가 얼마나 귀한 것인 지 깊이 생각하고 감사하며, 이 자유가 없는 북한을 향해서 이렇게 외치는 것입니다.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하나님을 섬길 수 있도록!”
'월요끝시간 기도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복음주의자의 양심 (열왕기하 22장 1-11절) (0) | 2020.10.14 |
---|---|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시편 2편 1-12절) (0) | 2020.10.13 |
다른 세대 (사사기 2장 1-10절) (0) | 2020.10.12 |
하나님의 등불 (사무엘상 3장 1-21절) (0) | 2020.10.10 |
다니엘의 기도 (다니엘 9:3-13) (0) | 2020.10.09 |